UEFA 유로파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 헨리크 라르손
1994년 7월 16일 로즈 볼 스타디움 미국 월드컵 3,4위전 긴 레게머리의 스웨덴 선수가 골키퍼와 수비수를 제치고 빈 골대로 팀 세 번째 득점을 성공시킨다 헨리크 라르손의 커리어 첫 번째 월드컵 골 이자 팀의 4:0 대승을 이끄는 쐐기골이었다 스웨덴 대표팀은 불가리아에 승리를 거두고 최종순위 3위로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으며 스웨덴의 젊은 영웅 역시 이 골로 세계 축구 팬들의 본인의 존재감을 심어준다
<프로필>
이름: 헨리크 에드워드 라르손(Henrik Edward Larsson)
나이: 1971년 9월 20일
국적: 스웨덴 카보베르데
신체: 178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선수 커리어>
국가대표: 106경기 37골
월드컵 3회(1994년 미국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UEFA 유로(유로 2000, 유로 2004, 유로 2008)
프로 커리어
회가보리 BK(1988년 ~ 1992년)
헬싱보리 IF(1992년 ~ 1993년)
페예노르트 로테르담(1993년 ~ 1997년)
셀틱 FC(1997년 ~ 2004년)
FC 바르셀로나(2004년 ~ 2006년)
헬싱보리 IF(2006년 ~ 2009년) → 200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임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전의 스웨덴 왕이자 셀틱이 배출한 마지막 월드 클래스 헨리크 라르손 비록 전성기 시절 네덜란드 와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보내 그의 커리어를 평가 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선수 말년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여준 클래스는 그가 빅리그에서 충분히 통하는 선수라는 것을 입증했으며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 대회에서 보여줬던 커리어는 충분히 월드클래스 골게터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헬싱보리 IF,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라르손이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건 1992년 헬싱보리 IF에 입단하면서였다 4부 리그 회가보리 BK에서 4 시즌 간 활약한 그는 잠재력을 인정받아 2부 리그 팀인 헬싱보리에 입단 입단 첫해 2부 리그 소속 총 34골을 넣으며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도왔고 처음 맞이한 1부 리그에서 총 30경기 17골을 터뜨리며 팀을 중위권 팀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3대 명문팀 중 하나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손짓했고 그는 1993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의 입단을 결정한다
라르손은 페예노르트 소속 4 시즌 간 149경기 42골을 넣으며 활약했고 그의 활약에 팀은 1993/1994, 1994/1995 2 연속 네덜란드 FA컵 우승의 영광을 누린다 이러한 활약으로 라르손은 1997년 스코틀랜드 거함 셀틱으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이적 과정에서 소속팀 페예노르트와 법정 다툼까지 가는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으나 결국 승소하며 1997년 셀틱으로 이적 왕의 귀환을 알린다
셀틱 FC
이적 첫 시즌 44경기 16골을 넣으며 스코틀랜드 리그에 완벽히 적응한 라르손은 라이벌 레인저스에 10년 동안 빼앗겼던 스코틀랜드 리그 왕자 자리를 되찾았으며 두 번째 시즌 51경기 35골을 넣으며 본인 커리어 첫 번째 리그 득점왕에 등극한다 셀틱에서의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던 중 선수 생명 최악의 사건을 맞이하는데 1999/2000 시즌 올림피크 리옹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도중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만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당한 심각한 부상으로 선수생활 은퇴 위기까지 노였던 라르손은 강력한 멘털과 불굴의 의지로 7개월간의 고통스러운 재활을 이겨내고 그라운드로 복귀한다 심각한 부상 후 복귀로 예전 같은 활약을 보여주기 힘들 거라는 대부분의 예상이었지만 라르손은 예상을 깨고 2000/2001 시즌 유럽에서 가장 골을 많이 넣는 선수에게 수여하는 유로피언 골든슈를 받게 되는데 본인 커리어 하이 기록인 50경기 53골이라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장기간 부상으로 은퇴 위기까지 갔던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시즌을 만들어낸다 말 그대로 라르손의 정신력과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시즌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가온 2002/2003 시즌 아쉽게 리그에서는 라이벌 레인저스에 왕좌 타이틀을 내줬지만 UEFA 컵 8강에서 리버풀을 3:1로 누르는 등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진출한다 결승전 상대는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포르투로 유럽의 떠오르는 젊은 명장 무리뉴와 마틴오닐의 대결 스코틀랜드 와 포르투갈 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의 대결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경기는 시작되고 라르손의 멀티골이 터지는 등 시종일관 1골씩 주고받는 명승부가 이어졌고 2:2 연장접전 혈투 끝 포르투에 골을 허용하며 2:3 패배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셀틱이적 후 부상으로 시즌을 도중에 마감한 1999/2000 시즌에 이어 두 번째 무관에 그치며 시즌을 종료해야 했다
비록 셀틱에서 UEFA 대항전에 우승은 못했지만 총 7 시즌을 뛰며 315경기 242골을 기록하며 4번의 리그 타이틀과 2번의 FA컵을 선물 셀틱의 왕으로 군림하며 2004년 셀틱과의 동행을 마무리한다
FC 바르셀로나
한국나이 34살 비교적 많은 나이에 뒤늦게 빅클럽으로의 이적이 성사되고 라리가의 거함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한다
입단 초반 지울리와 에투에 밀려 경기 출전이 제한적이었으나 그의 경기당 득점력과 뛰어난 축구지능을 인지한 레이카르트 감독은 호나우딩요, 에투, 라르손 라인으로 변화를 주며 공격력을 강화하였고 라르손 역시 감독 기대에 부응하듯 선발출전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의 리그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 당하며 바르셀로나 첫 시즌을 아쉽게 마무리한다
이후 맞이한 두 번째 시즌 이자 역사적인 바르셀로나의 2005/2006 시즌 선발과 교체출전을 오가며 경기 출전 시 순도 높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리그 2연패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아스널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후반 교체출전하여 꿈에 그리던 챔피언스리그 결승무대를 밟는다 라르손이 투입되기 전 바르셀로나는 한 명이 퇴장당한 아스널을 상대로 0:1 끌려가고 있었고 경기력 역시 매끄럽지 못한 상태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라르손은 교체로 들어간 결승전 2 어시스트를 기록 팀의 2:1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고 팀의 2번째 빅이어 타이틀 획득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바르셀로나 이적 두 시즌 간 두 번의 라리가 한 번의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획득한 라르손은 바르셀로나의 계약 연장 요청에도 선수생활 말년을 고향팀에서 보내기 위해 헬싱보리로 이적하며 바르셀로나와 행복했던 동행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고향으로 복귀한 라르손은 임대의 전설을 쓰게 되는데 스웨덴 리그는 추운 겨울로 인해 K리그와 동일한 춘추제 리그를 도입 10월이면 리그가 마무리된다 그 시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판 니스텔루이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루이 사하의 부상으로 공격수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때마침 라르손에게 3개월 단기 임대를 요청 라르손의 수락으로 3개월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비록 많은 골을 넣진 못했지만 중요한 경기에 골을 넣었고 팀의 경기가 안 풀리면 중요한 순간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플레이로 팀의 승점을 따오는 활약을 보이며 임대의 전설이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이러한 활약에 구단과 퍼거슨 감독은 시즌 종료까지 계약 연장을 요청했지만 팀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고향팀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고향팀으로 복귀한 라르손은 2009년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며 정들었던 그라운드와 작별한다
국가대표
월드컵, 유로
유망주로 출전한 1994년 미국 월드컵 주로 교체자원으로 출전하며 팀의 4강 진출을 도왔으며 3,4위 결정전 선발 출전하여 팀의 3위 등극과 본인은 골을 기록하는 등 월드컵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의 아픔을 딛고 8년 만인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다 8년 전 월드컵과는 달리 팀의 에이스로 선발되어 출전하지만 스웨덴 대표팀의 사정은 마냥 좋지 못했는데 당시 최악의 죽음의 조에 속하며 잉글랜드,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와 한조에 속하게 된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16강 진출을 예상했으며 8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한 스웨덴에 대해서는 조 예선만 치르고 짐을 싸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고 스웨덴 축구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에 라르손의 마무리가 더해지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죽음의 조 1위로 통과 16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첫 경기 잉글랜드와의 경기 선제골을 실점하지만 동점골로 응수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잉글랜드에 스웨덴 징크스를 되살려줬으며 16강 진출의 고비였던 나이지리아전 선제골 실점 후 라르손의 멀티골로 2:1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후 비기기만 해도 올라가는 아르헨티나와의 3차전은 스벤손의 환상적인 FK 골로 1:0 리드를 잡으며 앞서갔고 경기막판 크레스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지만 1:1 동점으로 당당히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비록 16강 전에서 돌풍의 팀 세네갈에 1:2 패배를 당하며 탈락하지만 라르손은 16강전 선제골을 넣는 등 팀이 중요한 순간 골을 넣어주는 스타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120% 수행하며 두 번째 월드컵을 마무리한다
커리어 마지막인 독일 월드컵 역시 16강 진출의 가장 큰 고비였던 잉글랜드와의 조별예선 3차전 골을 기록하며 팀의 16강 진출에 앞장섰으나 16강전 개최국 독일에 0:2 패배하며 아쉽게 월드컵 무대를 마무리한다
유로 대회 역시 월드컵과 동일한 총 세 번의 대회에 참가 첫 번째 유로 2000 대회 개최국 벨기에, 우승후보 이탈리아에게 패하며 조 꼴찌로 팀은 탈락하지만 라르손은 이탈리아와의 3차전 완벽한 라인브레이킹을 보여주며 아주리 군단의 빗장수비를 한순간 무너뜨리고 골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두 번째 참가한 유로 2004 대회 1차전 불가리아를 상대로 2골을 넣는 등 팀의 5:0 대승에 일조하며 조 1위 8강 진출에 성공하지만 팀은 8강전 네덜란드에 승부차기 패배하며 대회를 마무리한다
글을 마치며
박지성 VS 손흥민 누가 더 위대한 축구 선수인지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영원한 난제일 것이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스웨덴 축구팬들 역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와 라르손 중 누가 더 훌륭한 선수인지 여러 의견이 나뉜다고 한다 분명 커리어 대부분을 빅클럽에서 활약하며 가는 팀마다 리그 우승을 이뤄낸 즐라탄이 표면적으로 더 위대한 선수일 수 있으나 라르손이 스웨덴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 대회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넣는 에이스 다운 면모와 선수 본인의 두 번의 국가대표 은퇴 기간 동안 그의 복귀를 염원하는 팬들의 서명운동이나 총리까지 나서서 복귀를 요청하는 모습은 분명 라르손 역시 스웨덴 축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스웬덴 축구의 한 획을 그은 월드 클래스 스트라이커라는 의견에 변함없을 것이다
뒤늦은 나이 빅클럽으로 이적해 본인의 클래스를 증명했으며 선수 생명 위기까지 가는 부상에도 강철 같은 멘털로 끝없는 재활 끝에 부활한 그의 모습에 전 세계 축구팬들은 그를 더 기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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