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시티의 레전드 야야 투레
2010/2011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잉글랜드 FA컵 4강전 맨유와 결승전 스토크시티를 1:0으로 꺾으면서 무려 3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감격을 누린다 경기 중 엄청난 중원 장악력과 4강전, 결승전 모두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의 1등 공신인 선수가 바로 야야 투레였고 야야 투레는 당시 440억 원의 이적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FA 우승과 더불어 리그 4위라는 성적의 중심에 섰고 맨체스터 시티에 챔피언스리그 출전권까지 선물하게 된다
<프로필>
이름: 녜녜리 야야 투레(Gnégnéri Yaya Touré)
출생: 1983년 5월 13일
국적: 코트디부아르
신체: 190CM / 90KG
포지션: 미드필더
국가대표: 102경기 19골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
프로 커리어
KSK 베베런(2001년 ~ 2003년)
FC 메탈루흐 도네츠크(2003년 ~ 2005년)
올림피아코스 FC(2005년 ~ 2006년)
AS 모나코 FC(2006년 ~ 2007년)
FC 바르셀로나(2007년 ~ 2010년)
맨체스터 시티 FC(2010년 ~ 2018년)
올림피아코스 FC(2018년)
칭다오 황하이(2019년 ~ 2020년)
2008/2009 시즌을 앞두고 프리미어리그의 중위권 팀 맨체스터 시티에 카타르 부호 만수르가 구단주로 취임하며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국내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크게 인지도가 없었던 맨시티였고 현재야 유럽의 강호로 불리며 맨유와 맨체스터 더비를 생산하며 위상이 올라갔지만 사실 만수르 인수전 맨시티는 프리미어리그의 그저 그런 팀에 불과했고 만수르가 인수 후 초반 몇 년까지도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그런 맨시티가 지금처럼 강팀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중심이 되어준 선수가 바로 야야 투레였다 맨시티는 확실히 야야 투레 영입 전 후로 나뉠 수 있으며 맨시티가 리그 우승과 더불어 유럽 챔피언스리그 단골손님으로 성장하기까지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이기도 했다
올림피아코스 FC, AS 모나코
2001년 벨기에 프로리그 베베런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된 야야 투레는 2년 동안의 활약 후 팀의 재정위기와 함께 FC 메탈루흐 도네츠크로 이적 2년간의 활약 후 그리스 리그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하게 된다
야야 투레가 본격적으로 축구사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팀이기도 했으며 유럽 전역에 각광받는 젊은 유망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올림피아코스 이적 후부터로 볼 수 있다 2005년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한 야야 투레는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브라질 레전드 히바우두와 함께 중원에서의 압도적인 중원 장악력과 한층 업그레이드된 수준급 빌드업 능력을 보여주며 활약했고 이적 첫 시즌 그리스 리그 우승과 FA컵 더블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게 된다
그리스 리그 이적 후 한 시즌만에 유럽전역에서 관심받는 젊은 미드필더로 떠오는 야야 투레는 유럽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특히 아스널과 많은 이적설을 뿌리기도 했는데 당시 국가대표 경험이 없던 야야 투레의 비자문제와 벵거 감독의 낮은 평가로 인해 아스널 이적은 불발되고 만다 하지만 그리스 리그보다 더 큰 리그에서 뛰고 싶었던 야야 투레는 독일 월드컵 종료 후 한 시즌만에 프랑스 리그 AS 모나코로 이적하게 된다
2006년 야야 투레와 더불어 얀 콜러 등 야심 찬 영입과 함께 큰 기대를 안고 시즌을 시작한 AS 모나코였지만 큰 기대와는 달리 야야 투레와 함께 야심 차게 영입한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며 그 시즌 AS 모나코는 리그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야야 투레만큼은 팀 내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프랑스리그 27경기 출전 5골을 넣었는데 특히 중원 장악력에 더한 중거리 슛 능력까지 장착하며 공격형 미드필더로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역시 한 시즌만에 스페인의 거함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FC 바르셀로나
2007년 티에리 앙리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전격 이적한 야야 투레는 당시 중앙 미드필더에 사비와 이니에스타라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존재로 인해 본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를 수행하게 된다 비록 본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와 혹은 센터백으로 출전하면서도 바르셀로나 미드필더들에게는 없던 피지컬과 수비력을 바탕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특히 맨유와의 200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센터백으로 출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기도 한다
2008/2009 시즌 6관왕과 챔피언스리그 결승 출전과는 별개로 2008 시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며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수비력과 패싱력을 겸비한 부스케츠를 선발로 쓰기 시작하면서 투레의 출전 시간은 조금씩 줄기 시작하였고 2009/2010 시즌 부상과 컨디션이 하락하게 되며 완전히 부스케츠에 밀려나 서브자원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결국 선발 출전을 원했던 야야 투레는 공개적으로 이적을 결심하게 되고 그렇게 맨체스터 시티로 2010년 여름 이적하게 된다
맨체스터 시티 FC
2010년 7월 2일 당시 한화 442억의 엄청난 이적료로 프리미어리그 신흥 강호 맨시티로 이적하게 된 투레는 이적 첫 시즌부터 별도의 적응기 간 없이 주전을 꿰차며 활약하기 시작했고 리그 35경기 출전 8 득점 4 도움으로 스트라이커 테베즈 다음으로 팀 내에서 많은 골을 기록하며 모든 대회 총 12 득점을 기록 FA컵 우승과 다음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에 일조하며 맨시티의 대체불가 자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음 해 2011/2012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확보로 인해 세계적인 선수들의 보강으로 더블 스쿼드를 구축한 맨시티였지만 야야 투레의 중원에서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그를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게 만들었으며 맨시티의 44년 만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주역이 되며 맨시티와 프리미어리그를 상징하는 미드필더로 존재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다음시즌 역시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특히 이 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레알 중원을 무너뜨리며 홀로 활약했던 모습은 현재까지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회자되는 경기이기도 했으며 2012/2013 시즌 비록 득점은 모든 대회 10 득점에 그쳤지만 육 각형 미드필드의 표본으로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활약을 보여주며 완벽에 가까운 미드필더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2013/2014 시즌 야야 투레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중원 장악력과 안정적인 빌드업 능력 타고난 발목힘에서 나오는 중거리슛에 더해 오프 더 볼 프리킥 능력까지 장착하며 리그 35경기 20골을 기록 맨시티 팀 내 득점 1위 기록과 함께 프랭크 램파드 이후 20골을 넣은 두 번째 미드필더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팀을 이끌었고 맨시티에 두 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 타이틀을 안겨주게 된다
이 시즌 확실히 맨체스터 시티의 중심으로 모든 대회에 눈부신 활약을 했으며 특히 공격적인 능력이 빛을 발하며 강팀 약팀 가릴 것 없이 중원에서 맹활약했으며 득점뿐 아닌 빌드업 공수 조율면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하며 PFA 올해의 선수,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등 개인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쓸며 본인 커리어 최고의 한 해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다음시즌 2014/2015 시즌을 기점으로 폼이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시즌 초반 전 시즌 보여줬던 득점력 부진과 함께 떨어진 기동력에 의해 수비력까지 지적받으며 팀 내에서 팬들에게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선수로 전략하기도 했지만 정작 야야 투레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으로 빠져있는 리그경기에서 맨시티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부진을 보여주며 그의 빈자리를 체감해야 했고 네이션스컵이 끝나고 한 달 만에 복귀한 뉴캐슬전에서 투레는 중원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주며 아구에로, 실바 등 공격수들이 전방에서 마음 놓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활약을 보여준다
그렇게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강팀과의 경기 혹은 팀의 중요한 경기에 제 역할을 해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 야야 투레였고 결국 맨시티 이적 전 시즌인 17/18 시즌 전까지 리그 10 득점 내외의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마지막 시즌 프리미어리그 3번째 우승 타이틀을 목에 걸고 8년간 활약했던 맨시티를 떠나게 된다
이후 올림피아코스 중국리그에서 잠시나마 활약하며 2019/2020 시즌을 끝으로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나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은퇴하게 된다
국가대표
코트디부아르의 황금세대 멤버로 활약하며 총 3번의 월드컵에 출전한 야야 투레였지만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특히 코트디부아르는 2006, 2010 월드컵 아프리카 최고의 전력이라는 평가 속에서도 죽음의 조에 속하는 불운을 맛보며 조별예선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했는데 독일 월드컵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남아공 월드컵 브라질, 포르투갈에 밀려 최강의 전력임에도 불구 아쉽게 월드컵에서 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진 못하게 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노쇠한 드로그바가 후반 교체자원으로 출전하면서 주장완장을 차고 출전한 야야 투레였고 일본과의 첫 경기 승리를 거두며 좋은 출발을 보이기도 했지만 조 예선 그리스와의 마지막 경기 비기기만 해도 16강 출전이 확정되는 경기에서 그리스에 일격의 패배를 당하며 역시나 조별예선 탈락하며 끝내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해 실패하며 마지막 월드컵 역시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월드컵에서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야야 투레는 드로그바의 은퇴 이후 주장완장을 차고 참가한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팀의 중심을 잡아줌과 동시에 중원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이끌었고 결국 코트디부아르를 아프리카 챔피언자리에 올려놓으며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첫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글을 마치며
전성기 때의 야야 투레는 역대 아프리카 미드필더 중 최고로 꼽을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당시 세계 최고 미드필더를 다투는 선수였으며 여러 에이스급 선수가 즐비했던 맨시티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팀의 에이스이자 중심이었다 당시 완벽한 육각형 미드필더라는 찬사를 얻었으며 실제로 그 기간 동안 그 어떤 선수보다도 완벽한 육각형 툴을 지닌 선수로 멀티 플레이어의 네덜란드 레전드 굴리트 와도 비교되며 현대판 루드 굴리트라는 닉네임을 갖기도 했던 선수였다
비록 2013/2014 시즌 이후 갑작스러운 신체적 한계로 인해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기도 했지만 현 맨시티가 강팀으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성기 시절의 야야 투레는 그 시절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으며 언제든 게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선수이기도 했기에 아직도 그의 활약상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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