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의 성난 황소 젠나로 가투소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치열했던 경기 연장 후반 이탈리아의 한 선수는 설기현의 잘못된 판단에 의한 힐패스를 차단해 골키퍼와 1:1 찬스를 만들어 슛을 찼고 대한민국 이운재 골키퍼의 선방으로 한국은 위험천만한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만약 이 슛이 골로 연결됐다면 골든골이 적용된 대회였기에 한국은 16강에서 탈락할 수 있었는데 후반 중반 교체 투입돼 특유의 터프한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휩쓸고 다니며 한국을 16강 탈락위기까지 내몰았던 이 선수가 바로 젠나소 가투소 선수이다
<프로필>
이름: 젠나로 이반 리노 가투소(Gennaro Ivan Rino Gattuso)
출생: 1978년 1월 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 177CM / 77KG
포지션: 미드필더
국가대표: 73경기 1골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UEFA 유로
유로 2004, 유로 2008
프로 커리어
AC 페루자 칼초(1995년 ~ 1997년)
레인저스 FC(1997년 ~ 1998년)
살레르니타나 칼초(1998년 ~ 1999년)
AC 밀란(1999년 ~ 2012년)
FC 시옹(2012년~ 2013년)
2000년대 초 중반 세리아 A의 강호 AC 밀란엔 소위 공을 잘 찬다는 미드필더들이 즐비했다 카카, 루이 코스타, 피를로, 시도르프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드필더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이 선수들이 수비 부담을 덜고 공격에 집중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그라운드에서 완성한 활동량과 터프한 플레이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가투소의 존재감 때문 일 것이다 비록 앞에서 언급했던 선수들보다 공을 이쁘게 잘 차지는 못했지만 이 선수들에겐 없는 특유의 터프함과 투쟁심으로 무장했던 가투소의 커리어를 돌아보자
AC 페루자 칼초, 레인저스 FC
1995년 페루자 소속 프로데뷔에 성공한 가투소는 첫 시즌 세리아 B 2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팀은 다음 시즌 세리아 A 승격하며 프로 2년 차 세리아 A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2년 차 역시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지 못한 채 리그 8경기 출전에 그치며 주전 확보에 실패하게 되고 다음시즌 스코틀랜드 강호 레인저스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 선수의 해외진출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조금 뜬금포 이적으로 보일 수 있었으나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터프한 리그인 스코틀랜드 리그는 투쟁심 강한 미드필더인 가투소의 스타일과 잘 맞는 리그였고 가투소는 이적 첫 시즌 주전을 차지하며 리그 29경기 출전 3골을 기록 좋은 활약으로 유럽무대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하지만 첫 시즌의 활약과는 별개로 다음시즌 새로 부임한 딕 아드보카드감독과의 불화로 주전경쟁에 실패하며 리그 5경기에 그치게 되고 결국 2 시즌만에 살레르니타나칼초로 이적 세리아 A 복귀하게 된다
살레르니타나칼초에서의 첫 시즌 리그 25경기에 활약했는데 특히 인터밀란과의 경기 당시 유럽무대를 호령하던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이탈리아 빅 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결국 한 시즌만에 이적을 하게 된다
AC 밀란
살레르니타나칼초에서의 터프한 움직임과 완성한 활동량으로 AS 로마의 러브콜을 받기도 한 가투소였지만 그는 본인의 드림 클럽인 AC 밀란으로 이적을 희망하게 되고 그렇게 1999년 본인이 그토록 원했던 AC밀란으로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입단 후 두 시즌 동안 AC 밀란의 알베르티니, 레오나르도 등 포화진형의 미드필더진에 밀려 오른쪽 자원으로 대부분 경기를 소화하게 되고 본인의 주 측 포지션이 아님에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이며 점차 AC 밀란의 주축 자원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가투소 축구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감독과 선수가 2001년 AC 밀란으로 오게 되는데 바로 안첼로티 감독과 피를로 선수였다
안첼로티 감독은 이탈리아의 유망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피를로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진 후방에서 부터의 공격전개를 통해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피를로의 부족한 수비력을 가투소의 왕성한 활동량과 투쟁심으로 메꾸며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라인을 구축하게 된다 안첼로티 체제에서의 밀란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진과 포백을 형성할 수 있었고 공격력이 높은 미드필더진과 포백의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가투소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며 AC 밀란 전성기의 1등 공신이 된다
당시 기존 3백 전술을 구사하던 AC 밀란을 안 체 로티 감독은 4백으로 변경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트리 대형의 전술을 구사했는데 10번 선수들이 즐비한 미드필더진의 기용과 철의 4백이라 불리는 강력한 스쿼드의 수비진이었지만 수비수들의 줄 부상에도 리그 및 유럽대항전에서 최소 실점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가투소의 존재감이었다
중요한 경기 상대팀 에이스 선수들을 꽁꽁 묶으며 팀 내 언성히어로 역할을 보여준 가투소는 2002/2003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3/2004 시즌 세리아 A 우승, 2004/2005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06/2007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수많은 영광을 함께하게 되고 2006/2007 시즌 이후 잦은 부상과 노쇠화가 진행되며 전성기만큼의 활동량과 장악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2010/2011 시즌 전성기 모습의 기량을 회복하며 리그 31경기 출전 2골을 넣으며 또 한 번의 세리아 A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 리그 우승 이후 1 시즌을 더 밀란에서 뛴 가투소는 이후 2012/2012 스위스 리그 FC 시옹에서 1 시즌 활약 후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나게 된다
국가대표
2000년 처음으로 아주리 유니폼을 입은 가투소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유로 2004 대회에 참가하지만 두대회 연속 이탈리아의 부진 속 아쉽게 대회를 마감하며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참가하게 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이탈리아의 내부 상황은 좋지 못했다 당시 이탈리아 축구계를 뒤흔든 칼치오폴리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났으며 팀의 에이스 토티 역시 부상으로 대회 출전 여부가 확실치 않은 등 여러 가지 악재 속 월드컵에 참가한 가투소와 이탈리아였지만 가투소는 대회기간 동안 피를로와 함께 중원의 핵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한다
AC 밀란에서와 마찬가지로 4백과 공격적인 미드필더진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가투소는 지칠 줄 모르는 활동량과 터프한 수비력으로 이탈리아가 우승까지 단 2 실점만 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특히 상대팀의 에이스들을 꽁꽁 묶는 활약을 보여준다
당시 월드컵에서 활약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 가투소는 이탈리아 우승의 1등 공신으로 본인 커리어 최고의 정점을 찍음과 동시에 그가 왜 이탈리아와 AC 밀란에 필요한 존재인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인지를 보여주게 된다
글을 마치며
넓은 공간은 커퍼 하는 활동량, 상대팀 에이스를 꽁꽁 묶는 볼 탈취능력과 패스 차단능력 등 그라운드 내에 최고의 전투형 미드필더로 불렸던 가투소는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갖춘 당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대지를 가르는 롱패스와 환상적인 스루패스 중원에서의 탈압박이 축구를 보는 묘미이지만 가투소처럼 비록 볼을 이쁘게 차거나 컬트롤이 좋은 선수는 아니어도 중원에서의 투쟁심으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상대를 힘으로 찍어 누르는 전투적인 플레이 역시 축구를 보는 또 다른 묘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활동량과 투쟁심 그라운드에서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가투소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의 리그 우승과 AC 밀란의 황금기가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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