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마지막 발롱도르 수상자 카카
2006/2007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AC 밀란의 경기가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맨유는 챔스 8강전 AS 로마를 상대로 홈에서 6:1 대승 및 프리미어리그 1위를 달리며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 경기 단 한 명의 선수에게 2골을 헌납하고 만다
단 세 번의 터치로 맨유 수비진 세명을 바보로 만들며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는 모습에 6만여 올드 트래퍼드 관중들은 일순간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TV로 경기를 시청하던 전 세계 축구 팬들 역시 환상적인 그의 플레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맨유는 결국 홈에서 3:2 신승을 거두지만 원정 산시로 경기에 또 해당 선수에게 선제득점을 허용하며 3:0 패배하였고 그렇게 결승 진출이 좌절되고 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결승 진출을 좌절시키며 2006/2007 시즌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팀을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올려놨던 선수 브라질의 마지막 발롱도르 수상자 카카였다
<프로필>
이름: 히카르두 이젝송 두스산투스 레이치(Ricardo Izecson dos Santos Leite)
생년월일: 1982년 4월 22일
국적: 브라질, 이탈리아(2007년 이탈리아 시민권 취득)
신체: 187CM / 78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92경기 29골)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프로 커리어
상파울루 FC(2001년 ~ 2003년)
AC 밀란(2003년 ~ 2009년)
레알 마드리드 CF(2009년 ~ 2013년)
AC 밀란(2013년 ~ 2014년)
올랜도 시티(2014년 ~ 2017년) → 상파울루 FC 임대(2014년)
2009년 여름 유럽축구 이적시장은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등 큰 이슈가 많았는데 그전 세계 축구계를 시끄럽게 했던 이적설이 있었다 만수르의 자본을 등에 업은 맨체스터 시티는 팀 전력강화를 위해 세계 최고 선수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AC 밀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카카에게 당시 한화 2,000억 원의 이적료를 제안한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유입되는 현 축구 이적시장에도 2,000억 금액은 엄청난 액수지만 당시로 따지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한 맨체스터 시티였고 카카의 주급은 약 10억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당시 심각한 재정위기 속 자금 압박을 받고 있던 AC 밀란은 카카 이적에 동의하며 이적이 성사되는 듯했으나 수많은 AC 밀란 팬들이 카카의 집 앞으로 찾아와 팀 에이스의 이적을 만류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뤘고 카카 역시 AC 밀란 유니폼을 들고 팬들에게 화답하며 희대의 이적설은 일단락되고 만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긴 했지만 당시 그의 가치와 위상이 얼마만큼이었는지를 대변하는 이적설이었다
상파울루 FC
브라질 명문 클럽 상파울루에서 프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카카는 어린 시절 축구보다 테니스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상파울루 관계자의 요청에 카카는 상파울루 유스팀에 입단하며 정식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유스시절 또래에 비해 유난히 작고 마른 체격으로 성장통을 겪기도 한 카카였는데 2000년 수영장에서 넘어지며 척추 골절이 마비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만다
수술 성공확률이 단 2% 불과한 수술이었기에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며 카카는 기적적으로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 시기 재활훈련에 임하는 회복기간 동안 왜소했던 체격 역시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꾸준한 웨이트를 통해 선수시절 보기와는 다르게 강력한 몸싸움을 할 수 있는 파워까지 갖추게 된다
그렇게 2001년 꿈에 그리던 브라질 1부 리그에 데뷔한 카카는 빠른 스피드와 간결한 패스 플레이 거기에 골 결정력까지 탑재된 플레이를 보여주며 데뷔시즌 리그 12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고 그 시기 아드리아누와 세계 청소년 대회 월드컵에 참가하며 세계 무대에 본인의 존재 감을 알리기 시작한다
다음 시즌 역시 리그 9골과 컵 대회 6골을 기록하며 활약을 이거 갔고 그렇게 2003년 브라질 대표팀 선배이자 선수시절 AC 밀란에서 활약했던 레오나르두에 의해 이탈리아 세리아 A로 이적하게 된다
AC 밀란
2003년 AC 밀란으로 이적한 카카에 대한 기대는 어땠을까 비록 2002년 후보 선수로 월드컵에 참가하며 우승의 영광을 맞보긴 했지만 유럽 내에서는 카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고 당시 밀란의 감독인 안첼로티 역시 카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를 처음 공항에서 마주했을 때 그의 범생이 같은 외모와 깡 마른 체격조건에 속으로 실패한 영입이라고 생각했던 안첼로티 감독이었지만 그 생각은 단 하루 만에 환희로 바뀌게 되는데
다음날 시차적응이 덜 된 카카는 AC 밀란 훈련에 참가하게 되고 범생이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필드 위에서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가투소를 제치고 최고의 수비수 네스타를 앞에 두고 골망을 흔드는 그의 플레이에 안첼로티 감독은 구단주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보석을 얻었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시즌 비록 스쿠테토는 획득하지 못했지만 2002/2003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었던 AC 밀란이었고 당시 팀의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중용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인 루이 코스타가 건재했고 비록 이적 첫 시즌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히바우두였지만 그의 실력을 높게 평가한 안첼로티 감독은 다음 시즌부터 히바우두에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얘기한 만큼 카카는 두 선수의 백업 멤버로의 영입으로 언론에 평가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2003/2004 시즌 카카는 루이 코스타와 히바우두를 벤치로 밀어내며 당당히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는데 루이 코스타보다 더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골 결정력이 좋았기에 안첼로티 감독은 보다 센터 포워드 성향에 가까운 카카를 배치함으로 전방의 날카로움을 배가 시킨다 그렇게 세브첸코와 카카는 서로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세리아 A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카카는 이적 첫 시즌 리그 30경기 출전 10골을 넣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그 해 세리아 A 최고 선수상을 수상한다 이러한 카카의 활약에 힘입어 AC 밀란은 5년 만에 스쿠테토를 차지하며 세리아 A 정상에 오르게 된다
다음 시즌 역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활약하지만 2004/2005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기 선발출전하여 크레스포에게 환상적인 스루패스 어시스트를 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만 팀은 말도 안 되는 패배를 당하며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으며 리그 역시 유벤투스에 밀려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다음시즌 역시 챔피언스리그 4강전 바르셀로나에게 패배 및 리그 역시 유벤투스에 내주면 당대 최고의 스쿼드를 갖췄음에도 2 연속 무관으로 시즌을 마쳐야 했는데 이 시기 득점기계 세브첸코는 첼시로 이적함과 동시에 AC 밀란은 세대교체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맞게 된다
2006/2007 시즌 세브첸코의 이적과 기존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로 우려 속에 시즌을 시작한다 결국 리그에서 4~5위 순위를 겉돌며 리그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달랐는데 카카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시킨다 그 시즌 챔피언스리그는 카카를 위한 무대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조별리그 1차전 AEK 전 1골, 3차전 안더레흐트 전 1골, 4차전 안더레흐트 전 4골을 기록하며 팀을 16강 토너먼트에 진출시켰으며 1차전 득점 없이 비기고 2차전 역시 0:0으로 흘러가던 셀틱 전 연장막판 중안선 라인에서 볼을 받은 카카는 상대 수비 한 명을 몸싸움으로 이겨내며 드리블해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상대팀 수비와 골키퍼를 앞에 두고 환상적인 득점을 연결시킨다 이 골로 AC 밀란은 극적으로 8강에 진출하는데 8강 역시 1차전 홈에서 득점을 기록 2차전 원정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을 4강으로 이끈다
그 시즌 유럽에서 가장 강한 팀 중 하나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났지만 맨유전 역시 카카는 혼자만의 힘으로 팀을 캐리 하며 1차전 원정 2골, 2차전 홈 선제득점을 하는 등 팀을 결승에 올려놓는다 결승전 상대는 2년 전 자신들에게 이스탄불 참사를 안겼던 리버풀과의 리턴매치였고 리버풀의 수비형 미드필더 마스체라노가 전담마크하며 맨유전처럼 잔인하게 홀로 리버풀 수비진을 초토화시키지 못했지만 특유의 개인 돌파와 탈압박으로 리버풀 수비진을 흔들었고 피를로의 첫 골 프리킥을 얻어내기도 했으며 인자기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2:1 승리를 안긴다 그렇게 그 시즌 팀을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올려놓으며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다
AC 밀란이 기록한 챔피언스리그 20골 중 무려 10골을 홀로 담당하기도 했으며 중요한 순간 어시스트 역시 3개를 기록한 카카의 활약은 단일시즌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퍼포먼스였고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7년 IFFHS 세계 최우수 플레이메이커에 선정되었고 UEFA 올해의 공격수,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상,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도르를 모두 거머쥐며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어 버린다
그렇게 현재까지 AC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마지막 우승이자 브라질 선수 마지막 발롱도르를 수상한 카카는 2 시즌 더 AC 밀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데 2007/2008, 2008/2009 시즌 역시 AC 밀란은 세대교체에 실패한 상태였고 카카는 그런 AC 밀란의 공격을 홀로 이끌며 각 리그 15,16 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팀 부진 속 홀로 팀을 캐리 하는 카카였고 그런 카카는 AC 밀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팀의 레전드 수순을 밟아나갔다 하지만 결국 우승과 멀어진 팀 전력에 홀로 고군 분투한 카카였고 그렇게 2009년 이적시장이 시작된다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에서의 선수생활에 만족한 카카는 AC 밀란의 레전드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나타냈지만 당시 팀의 재정위기와 세계 최고의 팀 레알 마드리드의 영입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카카는 당시 한화 6,000만 파운드라는 역대 이적료 3위에 해당하는 거액의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갈락티코 2기를 발표한 페레즈 회장은 챔피언스리그 10회 우승인 라 데시마를 달성하기 위해 벤제마를 비롯 사비 알론소와 호날두 거기에 카카까지 영입하며 팀을 재정비했고 당시 지단은 본인이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활약하던 등번호 5번을 카카에게 제시할 만큼 엄청난 기대 속에 카카는 레알 마드리드 갈락티코 2기 멤버로 합류한다(카카는 지단의 등번호 5번에 부담을 느껴 8번을 선택한다)
그렇게 이적 첫 시즌인 2009/2010 시즌이 개막하고 2라운드 에스파뇰전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및 4,5라운드 전 연속골을 기록하며 AC 밀란에서와 마찬가지로 좋은 활약을 이어간다 특히 이적 첫 시즌 카카 최고의 경기는 당대 최고의 팀 이자 영원한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와의 1차전 경기였는데 카카는 레알 마드리드 공격을 이끌며 저돌적인 돌파와 특유의 패스 플레이로 레알 마드리드 공격의 활로를 뚫었고 여러 순간 좋은 찬스를 만들어내며 레알의 공격을 홀로 이끌었다 비록 팀은 0:1 아쉽게 석패했지만 바르셀로나전 레알 선수 중 가장 눈에 띄는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카카였고 앞으로 호날두 보다 카카가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로 활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16강전 리옹과의 경기 후 장기 부상을 당한 카카는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 불참하며 시즌 막바지 리그 경기에 복귀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장기 부상을 당하기 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카카였기에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여전히 그에게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무리뉴 감독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2010/2011 레알 마드리드에서 두 번째 시즌 첫 시즌과 달리 부상에서 회복해 무리뉴 감독과 좋은 시너지를 보여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카카는 시즌 초반부터 부상을 당해 전반기를 날려버리는데 문제는 아직 무릎 부상이 있었음에도 부상을 레알 마드리드에 감추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전을 무리하게 감행했고 결국 휴식과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월드컵을 참가한 결과 4개월 의 장기 부상에 시달리게 된다
설상가상 동일 포지션에 남아공 월드컵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세계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주목받는 메수트 외질이 영입되었으며 호날두와 좋은 시너지를 발휘하며 카카는 점점 마드리드에서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전 소속팀 AC 밀란의 복귀설과 아스날 이적설에 휘말리기도 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 속 전반기를 날리지만 부상에서 회복 후 돌아온 후반기 경기에 나올 때마다 나름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전성기 시절 압도적인 스피드에 의한 플레이는 감소됐지만 날카로운 패싱력과 중거리 슈팅 능력으로 리그 14경기 출장 7골 5 도움을 올리며 스탯 면에서는 확실히 클래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2011/2012 시즌 초반 출전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며 부활의 징조를 보이며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리그 5 득점 10 도움을 올리기도 하지만 바에이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교체로 투입되어 부진한 활약과 승부차기 실축까지 하는 등 팀 패배에 원흉으로 찍히며 무리뉴 감독과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마지막 기대마저 저버리고 만다
잦은 부상으로 AC 밀란 시절만큼의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본인대비 동일 포지션에 저렴한 이적료와 주급을 받으며 활약한 외질과의 가성비를 비교하면 분명 실패한 영입이었지만 출전 시간대비 괜찮은 득점력과 어시스트를 보여주며 클래스 있는 선수라는 거에는 의견이 없었다 하지만 AC 밀란 시절 폭발적이고 화려한 플레이의 카카와 비교하면 실패한 영입의 평가를 받았고 결국 12/13 시즌을 끝으로 친정팀 AC 밀란으로 복귀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친정팀 복귀 후 한 시즌을 활약한 뒤 미국 메이저리그 올랜드 시티로 이적 3 시즌 간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카카는 2017년 화려했던 프로생활을 마감하며 은퇴를 선언한다
국가대표
월드컵
2002년 프로 2년 차 선수에 불과했던 카카는 셀레상의 일원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참가한다 최종 엔트리 과정 속 떠오르는 신예선수에게 메이저대회 경험을 주기 위한 스콜라리 감독의 선택이었고 카카는 코스타리카와의 조별예선 3차전 30분을 소화하며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으며 그렇게 팀의 우승으로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 영광을 누린다
2002년 월드컵 우승멤버였으나 팀의 주축선수가 아니었기에 카카는 팀의 주축으로 참가한 2006년 월드컵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으며 마법의 4중주라 불리는 환상적인 공격라인의 한축을 담당하며 대회에 참가한다 하지만 당시의 브라질은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카카와 호나우지뉴의 더블 미드필더 라인이 그다지 좋은 시너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잉글랜드의 제라드 램파드 라인으로 비견될 수 있을 정도였는데 비록 호나우지뉴는 대회 최악의 부진으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만 카카는 크로아티아와의 1차전 결승골을 득점 팀의 1:0 승리를 도왔으며 16강 가나전 호나우두의 월드컵 최다 15골을 수비 뒷공간을 허무는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어시스트하는 등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다 결국 팀은 생각보다 부진한 경기력 속 8강전 프랑스에 패하며 대회를 마감하지만 2010년 월드컵 브라질 축구의 중심은 호나우지뉴에서 카카로 넘어가고 있었다
2010년 둥가 감독의 확고한 믿음 속 명실상부 셀레상의 에이스로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한다 무릎 부상을 레알 마드리드 보드진에 숨기면서 까지 참가했던 대회 카카는 3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부상에도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죽음의 조 1위 통과와 16강전 칠레전 승리를 이끌지만 8강전 네덜란드에게 압도적인 경기력 속에도 패배하며 결국 2 연속 8강에 머물며 대회를 마감한다 실리축구를 지향하는 둥가감독 축구 공격의 핵심이었으며 대회 과정 속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던 브라질이었기에 8강전 패배는 카카로 하여금 큰 실망으로 다가왔으며 그는 경기 종료 후 아쉬움을 머금은 채 월드컵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된다
글을 마치며
현역시절 슈팅, 드리블, 패스 삼박자가 완벽한 선수였던 카카 압도적인 스피드를 유지하며 동시에 공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치달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으며 치달 못지않게 환상적인 패싱력까지 갖추며 중요한 순간 날카로운 패스를 통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거기에 포워드 못지않은 득점력까지 겸비한 선수였던 카카 비록 레알 마드리드 시절 부상으로 유리몸의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부상당하기 전 AC 밀란에서 매 시즌 리그 3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철강왕의 모습까지 갖추었기에 현역시절 카카를 사랑하지 않는 팬들이 없을 정도였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 첫 시즌 무릎 부상을 숨기며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고 재활과 휴식에 전념했다면 그의 커리어는 지금보다 더 화려하고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동료들과 함께 이루어낸 성과지만 06/07 챔피언스리그 홀로 고군분투하며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던 모습과 호날두 메시 이전의 강력했던 임팩트는 아직도 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다른 세계 적인 브라질 선수들이 잦은 기행과 구설수에 오르며 프로답지 않은 소홀한 몸관리로 짧은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과 달리 부상으로 전성기가 짧았던 카카였기에 그의 커리어는 더욱더 아쉬움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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