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황제 프란체스코 토티
2017년 5월 28일 이탈리아 리그 세리아 A 38라운드 AS 로마 대 제노아의 경기 후반 53분 AS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7만 관중들의 환호 속 그라운드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팀의 레전드 프란체스코 토티와 모하메드 살라가 교체되는 순간인데 그렇게 토티는 본인 커리어 마지막 은퇴경기에 교체되어 그라운드에 들어선다
경기 종료 후 팀의 레전드 토티의 은퇴를 기르기 위해 성대한 은퇴식이 진행됐고 우승 욕심과 돈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AS 로마 한 팀 만을 바라보며 선수생활을 했던 AS 로마 월클럽맨으로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이었다 그의 은퇴식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많은 팬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토티 역시 감정에 북받쳐 가족들을 부여안은 채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축구커리어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며 환호를 보내는 팬들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토티와 그런 자신들의 레전드 선수의 은퇴 순간을 함께하며 눈물을 흘리는 팬들의 모습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으며 그렇게 토티는 유스 시절 포함 27년간의 AS 로마와 작별하며 프로 커리어를 마무리한다
<프로필>
이름: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
생년월일: 1976년 9월 27일
신체: 180CM / 82KG
국적: 이탈리아
국가대표(58경기 9골)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UEFA 유로
유로 2000, 유로 2004
프로 커리어
AS 로마(1992년 ~ 2017년)
트레콰르티스타 혹은 메디아푼타라고 불리는 공격형 미들필더 1.5선에서 플레이하며 팀의 플레이메이커를 담당하는 포지션인데 효율적인 개인기와 능숙한 볼 터치로 공간을 확보하고 자신의 스트라이커들에게 창의적인 패스를 뿌려 골 찬스를 만들어주고 필요할 땐 본인들이 일선에서 득점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어를 칭한다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수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압박받으며 플레이해야 하는 공격의 핵심 역할인 이 포지션을 대표하는 선수가 바로 프란체스코 토티인데 여기에 더해 펩 과르디올라와 스페인의 펄스 나인 전술이 나오기 전 펄스 나인의 시초로 가짜 공격수 역할을 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선수 프란체스코 토티의 커리어를 알아보자
AS 로마
유스 시절부터 타고난 재능을 보이며 이탈리아 내의 많은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던 토티는 13살 때 AC 밀란의 입단제의를 받는다 하지만 토티를 포함 할아버지와 그의 부모님 모두가 진성 로마인들이었기에 AC 밀란으로의 이적을 거절하고 1988년 AS 로마 유스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만약 토티가 AC 밀란의 제안을 받아들여 AC 밀란으로 이적했다면 토티와 밀란의 축구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한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1992/1993 시즌 18살의 나이로 브레시아 원정 경기를 통해 세리아 A 데뷔전을 치르며 화려한 로마 황제의 대관식을 알린다
1994/1995 시즌부터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토티는 1996/1997 시즌까지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프로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했고 1997/1998 시즌 그런 그의 축구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7/1998 시즌 로마의 새로운 감독으로 제만 감독이 부임하는데 제만 감독은 소위 닥공 축구를 지향하는 감독으로 실점을 해도 골을 넣으면 된다는 축구 철학을 가지고 있는 당시나 지금이나 수비축구로 대변되는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다소 이색적인 감독이었는데 그는 토티의 창의적인 축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당시 22살이던 토티를 주장으로 임명하고 토티 위주의 공격 전술을 짜기 시작했다 토티 역시 본인의 장기인 원터치 패스와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창의적인 스루패스등을 보여주며 공격형 미드필더로 한 단계 성장하기 시작한다
1999년 이탈리아 명장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로마 감독으로 부임한다 이 시기 로마는 적극적인 영입 정책을 통해 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며 공포의 7 공주로 대변되는 세리아 A의 한축을 담당 유벤투스와 양 밀란 그리고 더비 라이벌 라치오와 우승 경쟁을 한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빈첸조 몬텔라 등을 영입하며 토티와 삼각편대를 구축 공격진을 꾸려나갔고 미드필더 라인에 브라질 국가대표 수비형 미드필더 에메르손과 유로 2000 대회 좋은 활약을 보이며 최고의 스타로 등극한 토마시를 중원에 배치 미드필더진에 보다 안정되고 효율적인 라인을 구축했으며 수비라인은 중앙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월터 사무엘과 브라질의 위대한 라이트백 카푸를 배치함으로써 안정된 공격과 수비라인을 갖춘 게 된다
그렇게 맞이한 2000/2001 시즌 로마는 해당 시즌 리그 총 68골을 기록했는데 공격 삼인방은 47골을 합작하며 로마 골의 70% 지분을 담당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준다 특히 토티는 빠른 판단력과 능숙한 패스 플레이를 통해 바티스투타와 몬텔라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함과 동시에 본인 역시 13골을 기록하며 득점과 찬스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활약뿐만 아니라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들을 하나로 묶으며 시즌 내내 단단한 팀을 구축하는데 주장으로써 역할을 다하며 로마의 세리아 A 우승을 이끌게 된다
비록 다음시즌 유벤투스에게 승점 1점 차이로 리그 우승을 내주며 준우승에 그치지만 2 연속 리그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탄탄한 팀 전력과 동시에 토티 역시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두각을 나타내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토티는 2001/2002 시즌을 시작으로 리그 준우승만 총 9차례 기록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는데 2003/2004 시즌 토티는 리그 20 득점 6골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지만 또 한 번 유벤투스에게 밀려 리그 2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2006/2007 시즌부터 인터 밀란에게 우승을 내주며 3 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2006/2007 시즌은 토티 커리어에 있어 특별하고 수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시즌이었는데 현 김민재 소속팀 나폴리의 감독이기도 한 스팔레티 감독이 로마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2006/2007 시즌 스팔레티 감독의 부임과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지만 당시 로마는 공격진들의 줄 부상으로 인해 스트라이커 자리가 공석이었고 스팔레티 감독은 플레이메이커 토티를 스트라이커 자리에 두는 초 강수를 두게 된다 그리고 이 변칙전술은 큰 대박을 터뜨리게 되는데 공격수들에게 패스를 뿌려주고 본인 역시 골을 기록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토티는 본인 특유의 플레이스타일로 스트라이커 위치에서 엄청난 골을 넣기 시작해 리그 총 26골을 기록하며 생에 첫 세리아 A 득점왕에 등극함과 동시에 모든 대회 총 32골을 기록하며 한 시즌 유럽 각국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유러피언 골든슈까지 차지하게 된다 또한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 인터 밀란전 환상적인 중거리 칩 샷을 기록하며 팀을 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이끌며 리그는 준우승에 그치지만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과 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며 선수 커리어 최고의 한 해를 보내게 된다
이듬해 또 한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2 연속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2010/2011 시즌까지 4 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리 골을 기록하며 로마에서만 200골 고지를 돌파 AS 로마 역대 최다 출장 및 최다골 기록 보유자로 등극한다 또 한 2012년 체세나와의 홈경기 골을 기록하며 통산 211골 세리아 A 단일 클럽 최다골 기록까지 갈아치우는 활약을 보인다
2013/2014 시즌 팀을 또 한 번의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4년 만에 참가한 챔피언스리그 무대 맨체스터시티 원정경기에 출전하여 환상적인 칩샷으로 골을 기록 종전 긱스의 만 37세 289일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고령 득점자 타이틀을 획득함과 동시에 개인 통산 300골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며 세리아 A와 AS 로마의 전설이 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야속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2015/2016 시즌부터 팀 내의 입지가 줄기 시작하는데 제코의 영입과 스테판 엘 샤라위의 영입으로 인해 벤치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다행히 시즌 막바지 출전시간이 늘어나며 5경기 4골을 기록 출전하는 경기마다 클래스를 보여주며 팀을 위기해서 구하는 활약을 보여준다
이후 2016년 토리노전 골을 기록하며 세리아 A 통한 250골을 기록 세리아 A 역사상 두 번째 250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으며 유로파리그 아우스트리아 빈 전 출전하며 UEFA 주관대회 1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기도 하는 등 AS 로마 소속 307골이라는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기록을 세우며 2017년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국가대표
유로 2000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토티는 25살의 나이에 본인 커리어 첫 번째 국가대항전 메이저대회에 참가한다 유로 2000 대회 당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선수는 델 피에로였지만 토티는 등번호 20번을 달고 활약하며 조별리그 2차전 벨기에 전과 8강전 루마니아전 골을 기록하는 등 본인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와의 준결승 승부차기 키커로 나와 반데사르 키퍼를 상대로 당시 25살이라는 나이에 믿기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주면 파넨카킥을 성공하는 등 팀을 결승에 진출시킨다
프랑스와의 대망의 결승전 팀은 비록 연장 골든골을 허용하며 준우승에 그치지만 토티는 이탈리아 선제득점의 시발점인 환상적인 힐 패스를 통해 팀의 귀중한 선제득점을 도왔으며 후반 막판 델 피에로에게 두 번의 환상적인 득점 찬스를 만들어주지만 델 피에로가 성공시키지 못하기도 한다 만약 델 피에로가 두 번의 찬스 중 하나만 성공시켰더라면 유로 2000 대회 우승팀은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가 됐을 것이다 결국 결승전 맹활약한 토티는 팀의 패배에도 불구 경기 MOM에 선정되며 지단과의 플레이메이커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활약을 보여줌과 동시 이탈리아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매김한다
월드컵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내에서 등번호 10번이 상징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비록 현재는 과거에 비해 세계적인 선수가 드문 이탈리아지만 과거만 해도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이탈리아 스쿼드였고 그런 이탈리아 백넘버 10번은 팀을 상징하는 선수에게 부여되는 백넘버였다 또 한 당시만 해도 로베르토 바조, 델 피에로로 이어지던 유벤투스 10번이 아주리군단 10번이라는 공식이 존재했는데 그 공식을 깨부순 게 바로 토티였다 델 피에로의 등번호 10번을 넘겨받으며 이탈리아의 새로운 에이스가 되어 출전한 커리어 첫 번째 2002년 한일 월드컵 토티는 전반적으로 부진한 팀과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 답지 않은 경기력으로 16강전 대한민국에 패하며 아쉽게 대회를 마감한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역시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선수는 토티였고 에이스 역할로 두 번째 월드컵에 참가를 앞두고 있었지만 대회 4개월을 앞두고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만다 당시 이탈리아 자국 내에서 토티의 월드컵 참가 여부가 최대의 관심사였을 만큼 심각한 부상이었는데 토티가 수술을 끝내고 병원에 입원중일 때 이탈리아 총리가 직접 병문안을 가서 월드컵 참가 여부를 물어볼 정도였다
당시 이탈리아 감독 마르첼로 리피 역시 훈련을 소화하지 못해도 되니 회복에만 전념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만큼 국가대표님 내의 토티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기에 토티는 결국 완전치 않은 몸상태에도 불구 발목에 철심을 박은 채 월드컵에 출전하여 가나와의 첫 경기부터 프랑스와의 결승전 총 7경기 전 경기에 출전한다
완벽한 몸상태가 아니었던 토티였기에 리피 감독은 팀 전술을 토티 중심에서 보다 팀을 전체로 묶는 전술로 대회에 임했으며 토티 역시 완전치 못한 몸상태에도 불구 기대만큼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이진 못했지만 총 1골 4 어시스트를 기록 팀 내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4번째 월드컵 우승 주역으로 활약 본인 커리어 월드컵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긴다
월드컵 우승 이후 토티는 31살이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소속팀 AS 로마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로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우연의 일치인지 그의 은퇴 이후 유로 2020 대회 우승 전까지 이탈리아 축구는 다소 침체기를 겪으며 메이저대회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글을 마치며
유로 2004 대회 덴마크와의 조별예선 1차전 상대 선수 얼굴에 침을 뱉는 몰상식한 행동을 보여준 일화는 유명하다 그 외에도 경기 중 상대선수를 두 발로 밟기도 하는 등 선수시절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인해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토티였지만 그런 순간에도 그를 욕하는 AS 로마 팬들은 없었을 것이다
내 등번호 10번이 새겨진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과 페레스 회장의 친필 편지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은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유니폼을 보내왔고 나는 레알 마드리드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로마를 위해 평생을 바쳤고 내가 없는 로마를 상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토티-
선수 말년 엄청난 연봉에 혹해 중동이나 중국리그 미국 메이저리그 등으로 이적하는 선수가 많아지며 요즘 더욱더 원클럽맨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한마디로 요즘 축구는 낭만이 아닌 돈과 명예로 움직이고 있으며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돈과 우승 타이틀을 위해 이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유 중임에도 더 많은 명성과 우승 타이틀 연봉을 포기하고 숱한 이적제이에도 오직 AS 로마만을 바라보며 축구를 했던 토티야 말로 이 시대 진정한 낭만을 갖춘 선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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