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축구의 상징 나카타 히데토시
2015년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소속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한다 당시 이적료 약 410억 원 아시아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손흥민이었지만 아시아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는데 14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게 된다 14년 전 AS 로마에서 파르마로 2,600만 유로 당시 한화 약 350억이라는 금액으로 일본축구의 상징 나카타가 세운 최고 아시아 이적료 기록이었다
현재도 아시아 축구 선수들에게 높은 벽으로 여겨지는 유럽 무대 2000년대 초반 비록 파르마 모 기업의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지출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축구 불모지로 여겨지던 아시아 축구 선수를 35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영입할 만큼 출중한 실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가 나카타였다
<프로필>
이름: 나카타 히데토시(Nakata Hidetoshi)
출생: 1977년 1월 22일
국적: 일본
신체: 175CM / 72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77경기 11골)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로 커리어
벨라메 히라츠카(1995년 ~ 1998년)
AC 페루자(1998년 ~ 2000년)
AS 로마(2000년 ~ 2001년)
파르마 FC(2001년 ~ 2004년) → 볼로냐 FC(2004년) 임대
ACF 피오렌티나(2004년 ~ 2006년) → 볼턴 원더러스 FC(2005년 ~ 2006년) 임대
나카타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항상 허리와 목을 뻣뻣이 든 채 플레이를 유지했다 그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그라운드의 넓은 시야를 확보해 줄 수 있었고 빈 공간 동료들에게 적재적소에 날카로운 스루패스와 공간 패스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으며 큰 체구는 아니었지만 바디 발란스까지 잘 잡혀있어 몸싸움 상황에서도 쉽게 공을 뺏기지 않은 채 완벽한 볼 소유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중거리 슈팅능력 또한 좋아 날카로운 중거리슛과 프리킥으로 골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비록 한국나이 31살이라는 나이에 이른 은퇴를 했지만 확실히 선수시절 클래스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던 나카타에 대해 알아보자
벨라메 히라츠카, AC 페루자
9살 때 축구를 시작한 나카타는 어린 시절부터 큰 두각을 나타내며 미우라를 이을 일본 축구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게 된다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나카타는 1995년 소난 벨라메(현 벨라메 히라츠카)에 프로무대 데뷔에 성공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정확한 패싱력과 게임을 읽는 탁월한 능력으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그 해 10골을 기록하며 데뷔 시즌이라고 믿기지 않을 활약을 보여준다 그렇게 팀의 에이스로 성장한 나카타는 1997년 J리그 올스타와 1997,1998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연달아 수상하기도 했으며 98 프랑스월드컵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세리아 A 페루자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아 A로 이적한 나카타에 대한 현지 반응은 유니폼 팔이용 아시아 선수로 평가됐지만 데뷔전을 치른 후 그런 평가는 180도 바뀌게 된다 나카타의 데뷔전 상대는 당대 최고의 스쿼드를 자랑하는 팀이자 전 시즌 세리아 A 우승팀으로 지단, 델 피에로, 인자기, 다비즈 등이 활약하는 유벤투스였는데 0:3으로 끌려가던 경기 홀로 두 골을 넣으며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팀은 결국 아쉽게 4:3으로 패배하지만 나카타는 본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그렇게 세리아 A 무대에 별도의 적응기 간 없이 완벽한 적응에 성공한다
그 후 매 경기 나카타는 본인 특유의 날카로운 패싱력과 경기 조율 능력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고 첫 시즌 리그 10골을 기록하는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세리아 A 리그에 센세이션을 몰고 온다 그렇게 페루자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나카타는 강호 AS 로마로 이적하게 된다
AS 로마
2000년 1월 겨울 이적시장 당시로는 믿기 힘든 아시아 선수 최고 몸값을 기록하며 2,000만 유로 약 295억이라는 거액의 이적료로 AS 로마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나카타 포지션엔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 이자 AS 로마의 황제 토티가 버티고 있었고 나카타는 본인 위치와 맞지 않는 홀딩 미드필로 출장했으며 토티가 부상이나 교체됐을 시 그의 자리를 대체하며 본 포지션을 수행하게 된다
본인 위치에 맞지 않는 포지션과 많은 경기에 소화하지 못한 나카타였지만 토티가 빠졌을 때 본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그리고 2000/2001 시즌 팀 우승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던 유벤투스전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데
당시 1위 팀 로마는 2위 팀 유벤투스 원정을 떠났고 경기는 0:2로 뒤지고 있었다 승점차가 단 2점 차에 불과했고 만약 경기를 진다면 남은 경기 유벤투스에 자력으로 우승을 내줄 수 있기에 그 시즌 가장 중요한 경기였는데 경기에 부진한 토티를 대신해 후반 교체 출전한 나카타는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득점을 성공시켰으며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통해 팀의 2:2 무승부를 이끌어낸다 비록 많은 경기 출전하지 못했지만 나카타의 이 경기 활약으로 로마는 잔여 경기를 무사히 치르며 20년 만의 스쿠테토를 들 수 있었고 그렇게 중요한 경기 팀을 구해내는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아시아 선수 최초 세리아 A 스쿠테토를 들었음에도 토티라는 벽 때문에 더 이상 AS 로마에서 활약할 수 없었던 나카타는 결국 파르마로 이적하게 된다
파르마, 피오렌티나
앞에 소개글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파르마의 모기업은 스타성이 좋은 나카타를 영입해 일본 시장까지 진출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고 거기에 실력까지 출중한 나카타였기에 350억 원의 이적료를 들여 나카타를 영입한다 추가로 나카타에게 세리아 A 최고 수준 연봉까지 대우해 주며 나카타는 한 때 세리아 A 연봉랭킹 3위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기도 했다
파르마 이적 후 나카타는 본 포지션인 플레이 메이커로 활약했지만 당시 파르마는 부폰, 튀랑 등 한 시대를 대표했던 선수들의 이적으로 예전만 못한 전력이었고 팀은 리그 중위권을 맴돌게 된다 하지만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올라갔는데 나카타는 4강전 브레시아를 상대로 1,2 차전 각각 어시스트와 골을 기록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고 결승전 유벤투스를 만나게 된다
세리아 A 시절 나카타는 유독 유벤투스에 강했는데 결승전 역시 1차전 원정 중요한 골을 기록하며 팀을 무승부로 이끌었으며 홈에서 열린 2차전 2:2 무승부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우승하게 된다 그렇게 이탈리아 이적 후 AS 로마 소속 리그 우승을 파르마 소속으로 코파 이탈리아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지만 파르마는 모기업의 재정 악화 속 스타선수들의 이적으로 팀 전력은 점점 약화되었고 부진한 팀 상황 속 감독이 몇 차례 바뀌는 과도기를 보인다 이 과정 속 나카타 역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줬는데 설상가상 새로 부임한 프란델리 감독은 나카타를 오른쪽 윙에 기용하며 나카타는 끝내 전성기 기량만큼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모기업의 계속된 재정 악화 속 팀 내 최고 연봉자이지만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한 나카타는 파르마 마지막 시즌 볼로냐로 임대를 떠나게 되고 결국 그 시즌을 끝으로 피오렌티나로 이적한다
피오렌티나 이적 후 전성기 시절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나카타였고 결국 부진한 활약 속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로 임대 이적하지만 여전히 좋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나카타였고 그렇게 2006 시즌이 끝나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를 끝으로 한국나이 3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월드컵
1997년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을 통해 일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나카타는 이후 좋은 기량을 보여주며 일본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사상 최초 일본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게 되는데 당시만 해도 아직 대한민국에 한수 아래였던 일본이었기에 한국에 밀려 조 2위로 반대조 사우디에 밀려 조 2위를 차지한 이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플레이오프 승리 팀이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획득할 수 있었고 나카타는 두 개의 어시스트를 포함 3:2 승리의 3골 모두 결정적인 관여를 하며 일본 대표팀에 사상 첫 월드컵 본선 티켓을 선물해 준다
그렇게 참가한 일본과 나카타의 사상 첫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일본은 경험부족을 드러내며 3전 전패를 당하며 조 최하위로 탈락하지만 나카타는 중원에서 창의적인 패싱력과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렇게 세리아 A 페루자로 진출하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조국에서 열리는 대회였기에 여전한 팀의 상징 나카타의 진출은 당연시했지만 대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 대표팀 감독 필립 트루시에 감독과 잦은 충돌로 인해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며 일본열도를 긴장에 빠뜨린다 하지만 극적으로 화해하며 대회에 참가하게 되고 튀니지전 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일본의 사상 첫 16강 진출에 기여하게 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일본은 월드컵 리허설로 불리는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해 브라질과 2:2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좋은 경기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카타와 나카무라라는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진을 구축하며 큰 기대 속 대회를 치르지만 히딩크 감독의 호주에 1:3 패해 브라질전 1:4 패배를 당하는 등 여전한 세계 축구와의 격차를 보여주며 예선 탈락하게 되고 나카타 역시 기대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브라질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은퇴하게 된다
글을 마치며
세계적인 선수들 조차 무수히 실패를 겪을 만큼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세리아 A는 그야말로 공격수들의 무덤이었다 그런 치열하고 강력한 리그에 아시아 선수가 최초로 이적해 활약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카타는 분명 위대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전성기가 페루자 시절로 짧았기에 그의 실력을 평가 절 하기도 하지만 나카타는 당시 아시아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플레이 메이커로 중원 장악력과 안정된 볼 배급 거기에 날카로운 스루패스까지 갖춘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였다
오버헤드킥 골과 논스톱 발리슛 등 환상적인 골들을 만들어냈으며 유벤투스 같은 강팀과의 중요하 경기 역시 좋은 활약을 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 선수이기도 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은퇴해 축구계를 떠났지만 여전히 일본 축구의 상징으로 통하는 나카타의 플레이는 일본 팬들에게는 영원히 자랑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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