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커의 교과서 루드 반니스텔루이
2002/2003 시즌 리그 우승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암흑기가 찾아온다 퍼거슨 감독 은퇴 후 리그 우승과 거리가 멀기에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위치겠지만 프리미어리그 3위만 해도 암흑기라 불렸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2003/2004 시즌 절정의 폼을 보여준 아스날의 무패우승과 로만의 인수로 프리미어리그 신흥 강호로 떠오른 첼시에 2004/2005, 2005/2006 두 시즌 간 우승 타이틀을 내줘야 했으며 팀의 주축 로이 킨, 데이비드 베컴 등 팀의 불화로 인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암흑기라 불렸던 시절인데 이 시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루드 반니스텔루이의 득점력 하나만 보고 위안을 삼았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기 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격선봉에 홀로 득점을 책임지며 챔피언스리그 3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던 선수 스트라이커의 정석이라 불리며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오로지 득점 하나밖에 몰랐던 선수가 루드 반니스텔루이였다
<프로필>
이름: 뤼트 판니스텔로이(Ruud van Nistelrooy)
출생: 1976년 7월 1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 188CM / 99KG
포지션: 스트라이커
국가대표(70경기 35골)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UEFA 유로
유로 2004, 유로 2008
프로 커리어
FC 덴보스(1993년 ~ 1997년)
SC 헤이렌베이(1997년 ~ 1998년)
PSV 아인트호벤(1998년 ~ 200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001년 ~ 2006년)
레알 마드리드 CF(2006년 ~ 2010년)
함부르크 SV(2010년 ~ 2011년)
말라가 CF(2011년 ~ 2012년)
앞서 소개해드린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90년대 후반 시절과 같이 2000년대 초반 역시 세계 4대 스트라이커 명성을 지녔던 선수들이 존재했다 바티스투타와 동시대에 뛰며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4대 스트라이커 명성을 지켰던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비롯해 동유럽의 호나우두로 불렸던 세브첸코와 아스날의 킹 티에리 앙리였는데 티에리 앙리와 같은 프리미어리그 소속으로 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경쟁하며 세계 4대 스트라이커의 한 축을 담당했던 루드 반니스텔루이 그의 커리어 첫 시작은 스트라이커가 아닌 중앙 미드필더였다
네덜란드 리그
17살 네덜란드 리그 덴보스에서 프로 데뷔에 성공한 반니스텔루이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처음 축구를 시작한 유소년 시절 센터백으로 플레이했지만 그의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본 덴보시 코치는 반니를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포진시켰고 그렇게 프로 커리어를 쌓아간다
덴보시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반니스텔루이였지만 1997년 헤이렌베이로 이적하면서 조금씩 네덜란드 전역에 그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그전까지 투박한 플레이 스타일의 축구를 하며 다소 직선적인 플레이어였던 반니였지만 그런 그의 재능을 알아본 헤이렌베이 코치는 그에게 국가대표팀 선배 베르캄프의 플레이를 연구하며 본보기로 삼으라고 조언했고 그런 반니는 베르캄프의 플레이를 보면서 스스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베르캄프의 플레이를 분석하며 개인 훈련을 착실히 한 결과 그는 리그 30경기 13골을 뽑는 활약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재능을 알아본 네덜란드 명문클럽 PSV 아인트호벤은 반니를 영입 리스트에 올렸고 그렇게 한 시즌만에 네덜란드 최고 명문팀으로 이적하게 된다 아인트호벤 이적 당시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당시 감독이던 바비 롭슨 감독은 반니가 스트라이커로서 대성할 자질을 단번에 알아봤고 반니를 센터 포워드에 위치하며 리그를 시작한다
네덜란드에서 큰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아니었을뿐더러 본 포지션이 아닌 센터 포워드 위치로 포지션을 변경했기에 많은 언론들은 반니의 활약에 큰 의구심을 나타냈지만 그 의구심은 첫 경기만에 사라지는데 반니는 데뷔전 데뷔골을 시작으로 그 해 리그 34경기 31골이라는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네덜란드를 발칵 뒤집어 버림과 동시에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까지 휩쓸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다음 해 1999/2000 시즌 반니는 29골을 기록 2년 연속 리그 득점왕과 동시에 팀을 3 시즌 만에 리그 정상으로 올려놓았고 이러한 그의 활약에 전 유럽이 주목하기 시작한다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 등 유럽의 빅 클럽들이 그에게 영입제의를 했지만 반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을 원했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 역시 네덜란드 최고 스트라이커를 구단 역대 최다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2000년 4월 훈련도중 헤딩연습을 하던 반니는 무릎을 다쳤고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만다 그렇게 반니는 1년 동안 부상으로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면서 맨유와의 계약 역시 연기되지만 퍼거슨 감독은 반니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2001년 부상으로 돌아온 반니를 당시 240억이란 거액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데려오게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1/2002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반니 외에도 아르헨티나의 천재 플레이메이커 베론을 영입하며 리그 내 아스날 외에 경쟁자가 없는 강력한 전력에 살을 붙였고 그렇게 시작된 리그 반니스텔루이는 1년이라는 공백기를 가진 선수라고 믿기지 않는 활약을 하며 리그 적응 따위는 필요 없이 데뷔 전 데뷔골을 시작으로 리그 8경기 연속골을 득점시키며 퍼거슨 감독의 판단을 증명했으며 그 해 리그 총 23골 챔피언스리그 10골이라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준다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 23골은 2007/2008 리버풀 시절 토레스의 리그 24골 전까지 비 잉글랜드 선수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 최다 득점이었으며 챔피언스리그는 득점왕을 차지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하지만 리그 득점왕은 아스날의 킹 앙리가 차지하며 앞으로 시작될 두 선수의 리그 득점왕 타이틀 경쟁의 시작을 알린다
반니스텔루이의 엄청난 득점력에도 리그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무관의 시즌을 보내며 시작한 2002/2003 시즌 반니는 첫 시즌보다 더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는데 리그 25골을 기록하며 앙리를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리그 타이틀 획득에 성공한다 더불어 챔피언스리그 12골을 기록하며 2 연속 득점왕 타이틀을 얻으며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높인다
하지만 반니의 득점력과는 무관하게 2003 시즌을 시작으로 맨유는 극심한 암흑기를 보내게 되는데 2003/2004 FA 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반니는 맨유에서 우승과 큰 인연을 맺지 못한다 맨유에서의 마지막 05/06 시즌 역시 리그 21골이라는 득점력을 보여줬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폼이 조금씩 떨어지는 반니였고 퍼거슨 감독은 그런 반니를 선발에서 조금씩 제외하며 둘 사이 자연스럽게 불화가 나기 시작한다
05/06 시즌 리그 컵 경기 본인이 아닌 루이 사하를 선발 출전시킨 거에 불만을 품은 반니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퍼거슨 감독에게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으며 또 한 팀 동료 호날두와 훈련 중 충돌이 생기며 퍼거슨 감독의 눈밖에 난다 이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반니스텔루이는 다음 경기 출장하지 못했고 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만다
퍼거슨 감독은 아무리 스타플레이어 출신 선수라도 본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선수는 내치는 걸로 유명했는데 스탐의 자서전 사건, 로이 킨의 팀동료 폭로 사건, 베컴의 축구화 사건등 자신과 불화가 생기거나 팀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선수라면 과감히 이적시키며 팀의 기강을 잡았고 반니스텔루이 역시 그렇게 팀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219경기 150골이라는 경기당 0,7골에 육박하는 골을 넣었던 선수로서는 다소 씁쓸한 이적이 아닐 수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나고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180억 원에 이적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31살이라는 적지 않는 나이였음에도 폼이 떨어진 호나우두를 밀어내고 당당히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는데 시즌 초반 폼이 올라오지 않으며 마드리드 팬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오사수나 전 해트트릭을 시작으로 31라운드부터 최종전까지 8경기 10골이라는 엄청난 골을 생산해 내며 이적 첫 시즌 25골을 기록 라리가 득점왕에 등극한다
특히 라이벌 바르셀로나전 홈 원정 총 3골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두 시즌 간 빼앗겼던 팀의 라리가 우승타이틀 획득에 절대적 활약을 하며 마드리드 팬들의 엄청난 지지와 사랑을 받는다 이 시즌 리그 우승과 득점왕을 기록한 반니스텔루이는 네덜란드 리그, 잉글랜드 리그, 스페인 리그 득점왕과 리그 우승 달성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엄청난 커리어를 기록하게 된다
반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다 반니는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작별한 베컴과 특히 호흡이 잘 맞았는데 두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부터 베컴 크로스 반니스텔루이 득점 공식을 보여주었고 레알에서 만난 첫 시즌 역시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며 베컴의 마드리드 이적 후 첫 리그 우승 달성에 있어 절대적인 지원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즌 비록 최고의 파트너 베컴은 LA 갤럭시로 이적했지만 네덜란드 후배 스네이더, 로벤과 좋은 합을 맞추며 시즌 중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리그 24경기 16골이라는 변치 않는 득점력을 자랑했으며 팀의 라리가 2 연속 우승 타이틀 획득에 주역이 된다
하지만 반니는 2008/2009 시즌을 기점으로 잦은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11월 오른쪽 연골이 나가는 무릎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한다 2009/2010 시즌 역시 개막전 교체 투입 후 득점과 동시에 허벅지 부상을 당하며 6주간의 부상선수 명단에 오르는데 결국 잦은 부상으로 레알 마드리드 내에서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됐고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로 이적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이후 함부르크에서 신인 손흥민의 멘토 역할을 하며 한 시즌을 보낸 후 다시 스페인의 말라가로 이적하지만 좋은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고 그렇게 네덜란드산 득점기계는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프로 커리어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국가대표
자국에서 개최한 유로 2000 대회를 앞두고 당한 부상으로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으며 2002년 동갑내기 클루이베르트와 좋은 합을 보여주며 지역예선을 치루지만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에 밀려 조별 예선에서 탈락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 화려했던 프로 커리어와는 다르게 유독 국가대표 메이저대회와 인연이 없었던 반니스텔루이는 한국 나이 29살에 비로소 유로 2004 대회에 참가하며 네덜란드 유니폼을 입고 첫 번째 메이저대회에 나선다
첫 경기 독일전 아크로바틱 한 환상적인 동점골을 득점하는 등 대회 총 4골을 넣으며 활약하지만 팀은 4강전 개최국 포르투갈에 패하며 아쉽게 첫 번째 커리어를 마무리한다 이후 독일에서 개최한 2006년 월드컵 양쪽의 로벤, 반페르시와 3각편대를 이뤄 출전하지만 2차전 코트디부아르전 첫 골을 기록할 뿐 팀 자체적인 저조한 득점력 속에 또 한 번 16강 포르투갈에 패하며 본인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또 한 쓸쓸히 막을 내린다
그러고 보니 반니스텔루이는 총 세 번의 메이저 대회를 참가하면서 매번 죽음의 조에 들어가는 불운을 맞보기도 했는데 유로 2004 독일, 체코등과 한조 2006 독일 월드컵 아르헨티나, 코트디부아르와 한조 본인 커리어 마지막 대회인 유로 2008 역시 독일 월드컵 우승, 준우승 국가인 이탈리아, 프랑스와 한조에 속하는 최악의 조에 편성된다
하지만 매번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으며 축국 강국의 모습을 보여준 네덜란드였고 유로 2008 대회는 특히 조별예선에서 이탈리아 3:0 승리 프랑스 4:1 승리라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단숨에 대회 우승후보로 떠오르지만 당시 히딩크 감독이 이끌고 있던 러시아에 연장접전 끝 1:3으로 패하며 아쉽게 메이저대회를 마감한다 특히 유로 2008 대회 이탈리아전 선제 득점과 러시아전 0;1로 끌려가던 후반 막판 동점공을 득점하며 팀을 위기에 구하는 활약을 보여준 반니였기에 유로 2008 대회는 본인 커리어에 있어도 특히 아쉬운 대회로 남게 된다
글을 마치며
여담으로 반니스텔루이는 한국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선수로도 유명했는데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같은 PSV 아인트호벤 출신 선수라는 이유로 박지성의 맨유 적응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선수 말년 함부르크에서 만난 손흥민 선수에게인자한 베테랑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제 막 프로커리어를 시작한 손흥민에게 좋은 멘토가 되기도 하는 등 한국 축구와 인연이 많은 선수이기도 했다
득점을 함에 있어 정말 여러 장점이 많은 선수였지만 반니스텔루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박스 안에서 천재적인 플레이어였다는 표현이 잘 맞을 것이다 반니스텔루이의 플레이를 보면 탁월한 위치선정에 의한 완벽한 퍼스트 터치로 골을 생산해 냈는데 완벽한 바디 발란스까지 더해져 어떠한 자세 어떠한 상황에도 골을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스코어러였다
본인 역시 골을 넣고 팀이 승리한 경기 후 에도 라이벌 선수 앙리가 골을 넣었는지 못 넣었는지부터 확인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으며 어떻게 보면 팀 성적과 별개로 본인의 득점이 우선시됐던 선수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그의 골에 대한 집착이 세계 4대 스트라이커로 불리며 스트라이커의 정석으로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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