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폭격기 위르겐 클린스만
1994년 미국 월드컵 댈러스의 코튼 볼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독일의 조별예선 3차전 클린스만은 볼리비아와 스페인전 각 1골씩 기록하고 있었고 대한민국과의 경기 전반전 완벽한 퍼스트 터치에 이은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골을 기록한다 이 골을 포함 전반전 2골을 기록하며 독일의 3:2 승리를 이끌었던 클린스만 골을 성공시키고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환호하는 클린스만은 알고 있었을까 앞으로 이어질 대한민국과의 인연을
<프로필>
이름: 위르겐 클린스만(Jürgen Klinsmann)
나이: 1964년 7월 30일
국적: 독일
신체: 181CM / 73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선수 커리어>
국가대표: 108경기 47골
월드컵(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994년 미국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
UEFA 유로(유로 1988, 유로 1992, 유로 1996)
프로 커리어
슈투트가르트 키커스(1981년 ~ 1984년)
VFB 슈투트가르트(1984년 ~ 1989년)
인테르 밀란(1989년 ~ 1992년)
AS 모나코(1992년 ~ 1994년)
토트넘 홋스퍼 FC(1994년 ~ 1995년)
FC 바이에른 뮌헨(1995년 ~ 1997년)
UC 삼프도리아(1997년 ~ 1998년) → 토트넘 홋스퍼(1997년 ~ 1998년)/임대
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클린스만 감독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있어 여러 잡음이 있었고 독일과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클럽 감독으로서의 실패와 최근 독일 국가대표 출신 필립 람 의 인터뷰를 통해 국가대표 감독 선임에 대한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걱정이 앞서고 있다 하지만 감독 클린스만이 아닌 현역시절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한 시대를 호령했던 그의 선수 시절을 돌아보자
VFB 슈투트가르트
1982년 분데스리가 2부 리그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에서 데뷔한 클린스만은 1982/1983 시즌 20경기 2골을 기록 프로무대 적응기간을 거쳐 1983/1984 시즌 리그 19골을 기록하며 서독 내의 새로운 스트라이커의 탄생을 알린다
그런 그의 활약을 눈여겨보던 지역 내 라이벌팀인 VFB 슈투트가르트는 떠오르는 서독의 유망주를 영입하게 되고 클린스만은 드디어 분데스리가 1부 리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1984/1985 시즌 분데스리가 1부 리그 데뷔와 동시에 리그 15골을 기록 리그 득점 2위를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1985/1986, 1986/1987 두 시즌 연속 리그 16골을 넣으며 발군의 기량을 보여준다
1987/1988 시즌 기량이 만개한 클린스만은 리그에서 19골을 득점하며 생에 첫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서독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서독 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성장한다 이 시즌 팀도 승승장구하며 DFB 포칼 결승에 진출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에 2:5 패 하며 준우승에 그치며 커리어 첫 번째 우승 달성에 실패 다소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한다
1988/1989 시즌 부상으로 리그 25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리그 13골을 넣으며 5 시즌 연속 분데스리가 두 자리 득점에 성공했으며 UEFA 컵 8경기 4골로 활약하며 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달성한다 결승상대는 당대 최고의 팀 마라도나의 나폴리였는데 당시 UEFA 컵 결승은 홈 원정 2경기를 치르는 방식이었고 2차전 홈에서 3:3 비기는 등 좋은 경기를 하지만 1차전 나폴리 원정 1:2 패배를 극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준우승에 그치며 클린스만은 결국 슈투트가르트에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채 마지막 시즌도 마무리하게 된다
슈투트가르트 소속 총 156경기 79골 경기당 0.5골의 득점력을 보여준 클린스만의 활약을 유심히 지켜보는 클럽이 있었으니 바로 서독 국가대표 선배 마테우스와 브레메가 활약하고 있는 세리아 A 인테르 밀란이었다
인테르 밀란, AS 모나코
클린스만 영입 전 시즌 마테우스와 브레메의 영입으로 9년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한 인테르 밀란은 공격력 강화를 위해 클린스만을 영입 밀라노 라이벌 AC 밀란의 오렌지 삼총사에 대응하는 게르만 삼총사를 구축하며 전력 보강에 나선다 하지만 클린스만의 영입에도 불구 당시 감독이던 트라파토니의 전술은 극단적인 수비축구였는데 클린스만은 그럼에도 불구 세리아 A 첫 시즌 리그 13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가지만 팀은 리그 3위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 달성에 실패한다 다음 해 1990/1991 시즌 클린스만은 리그에서 14골을 넣으며 2 연속 리그 두 자리 득점에 성공 팀은 작년과 동일한 리그 3위에 그치지만 UEFA 컵에서 총 3골을 넣으며 팀의 UEFA 컵 우승에 일조 본인 커리어 첫 번째 우승의 영광을 맛보게 된다
두 시즌 연속 리그 두자리 득점 및 UEFA 컵 우승에 성공하며 성공적인 세리아 A 생활을 이어간 클린스만이지만 세 번째 시즌 팀은 리그 8위에 그치며 극도록 부진했으며 클린스만 역시 리그에서 7골을 기록하며 전 두 시즌에 비해 부진한 활약 속에 더해 감독과의 불화까지 겹치며 결국 인테르 밀란을 떠나 프랑스 AS 모나코로 갑작스러운 이적을 하게 된다
분데스리가, 세리아 A 리그에서 활약 중이던 정상급 스트라이커의 프랑스 리그 이적이 다소 의아할 수 있으나 당시 프랑스 리그는 이탈리아, 스페인 리그와 더불어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였으며 당시 AS 모나코의 감독은 40대의 젊은 시절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 팀을 지휘하고 있었다
클린스만은 프랑스 리그 이적 첫 시즌 역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리그 35경기 19골을 기록 어느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든 별도의 적응기간이 필요 없는 엄청난 스코어로의 면모를 보여줬으며 이러한 클린스만의 활약으로 팀은 그 해 리그 2위를 달성한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리그 우승팀 마르세유의 뇌물 수수 사건이 터지며 실질적인 우승팀은 AS 모나코가 되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다음 시즌 프랑스 리그 30경기 출전 10골을 기록하며 2 연속 두 자리 득점에 성공하지만 이런 클린스만의 활약에도 팀은 리그 최종순위 9위에 그치며 전 시즌에 비해 초라한 순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리그 순위와 별개로 챔피언스리그는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비록 결승진출은 실패했으나 클린스만은 챔피언스리그 10경기 4골을 넣으며 팀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으며 팀은 아쉽게 AC 밀란에 패 하며 결승진출은 좌절되고 만다 그렇게 프랑스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클린스만은 또 한 번 이적을 하게 되고 독일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축구 종가 잉글랜드로 무대를 옮기게 된다
토트넘, 바이에른 뮌헨
미국 월드컵 종료 후 1994/1995 시즌 현 손흥민 선수의 소속팀인 토트넘으로 이적하는데 당시 토트넘 팬들 및 잉글랜드 언론은 클린스만이 경기도중 다이빙 액션을 자주 취하는 플레이 성향을 꼬집어 그를 다이버로 비난하는 등 이적 초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리그가 시작되고 그의 환상적인 골 결정력에 놀라게 되는데
클린스만은 리그 41경기 출전 21골 모든 경기 26골을 기록하며 한 시즌만에 비판적인 여론을 180도 바꿔 놓았으며 토트넘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활약에도 불구 클린스만은 다음 해 또다시 이적을 하는데 조국리그인 분데스리가로 로 복귀 분데스리가 최고의 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된다
독일 내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는 명문 클럽 바이에른 뮌헨이지만 클린스만은 비교적 늦은 30대 초반에서야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이적한다 이적 후 역시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첫 시즌 리그 16골을 기록 바이에른 뮌헨의 주포로 활약하며 다시 돌아온 분데스리가에 왕의 귀환을 알리지만 특히 UEFA 컵에서의 활약이 독보였는데 총 12경기 15골이라는 말 그대로 팀을 캐리 하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바이에른 뮌헨에 UEFA 컵 우승을 안겨주었고 본인 커리어 두 번째 UEFA 컵 우승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듬해 1996/1997 시즌 분데스리가 15골을 기록 팀의 주포로서 좋은 활약을 이어갔으며 특히 본인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다음시즌 또다시 이적을 하게 되는데 당시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 마테우스와 회장직에 있던 베켄바워가 다음 시즌 클린스만의 골 기록을 두고 내기를 한 것이었고 이 내기가 언론에 공개되며 클린스만은 팀을 떠나게 된다 이 사건 이후로 현재까지 클린스만과 마테우스는 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결국 뮌헨에서의 두 시즌 간 UEFA 컵과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좋은 활약에도 불구 세리아 A 삼프도리아로 이적하지만 리그 후반기 또다시 토트넘으로 임대를 가게 된다 1997/1998 시즌 후반기 토트넘은 11경기 8패라는 극도의 부진 속 2부 리그 강등이라는 엄청난 위기에 놓이면서 클린스만에게 SOS를 보냈고 클린스만 역시 본인 커리어 마지막 월드컵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출전에 맞춰 폼을 유지하기 위해 토트넘 임대에 합의한다 그리고 진정한 임대신화이자 토트넘 레전드로 남게 되는데 활약을 보여주는데
37라운드 강등권 팀들 간의 대결로 이목이 집중됐던 AFC 윔블던 과의 단두대 매치 클린스만은 홀로 4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6:2 대승을 이끔과 동시에 리그 막판 6경기 출전 모두 골을 기록하는 등 토트넘 임대 15경기 9골을 넣으며 팀을 강등위기에서 구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35살에 보여준 엄청난 활약이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토트넘 선수생활 총 1년 반뿐이지만 현재도 토트넘 레전드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클린스만은 토트넘을 위기에서 구함과 동시에 본인은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는데 2003년 미국 리그 오렌지카운티블루스타에 깜짝 복귀를 하지만 이 시즌을 끝으로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은퇴하게 된다
국가대표
선수시절 저니맨 생활로 인해 클럽에서 많은 우승을 기록하지 못한 클린스만이지만 90년대 독일 대표팀 영광의 순간을 함께하며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과 유로 대회 모두 우승하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다
월드컵
1990년 커리어 첫 번째 출전한 이탈리아 월드컵 클린스만은 최고의 동료들 속 루디 푈러와 부동의 투톱을 이루며 전차군단의 주포로서 전 경기 선발 출전하며 활약한다 유고슬라비아와의 첫 경기 1골, 두번째 UAE전 1골 등 조별예선 두 골을 기록한 클린스만은 월드컵 우승의 분수령인 네덜란드와의 16강전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는데 경기 중 루디 푈러의 동반 퇴장 속 최전방에서 홀로 분전하며 시종일관 네덜란드 수비진을 괴롭혔고 선제골을 넣는 등 팀의 2:1승리에 기여 팀의 다운라운드 진출에 결정적 역활을 한다 이 후 독일은 체코, 잉글랜드, 아르헨티나를 차례로 꺾으며 통산 3번째 월드컵 우승 타이틀을 획득한다 클린스만 역시 대회기간 동안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며 총 3골을 기록 팀의 우승 주역으로 활약함과 동시에 월드컵 올스타에도 뽑히는 영광도 누리며 첫번째 월드컵을 환상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첫 번째 월드컵 성공 후 두 번째로 출전한 1994년 미국 월드컵 독일은 8강에서 탈락하지만 클린스만은 대회 총 5골을 넣으며 본인 커리어 메이저대회 최다 골 기록을 남기는 활약을 보여준다 이 대회는 향 후 독일 대표팀의 노쇠화의 시작점을 알리는 대회이기도 했는데 클린스만은 볼리비아와의 개막전 골을 시작으로 16강 벨기에전까지 총 5골을 넣지만 팀은 8강전 대회 다크호스 불가리아에게 패하게 된다 당시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 독일 대표팀은 후반 막판 체력 부진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등 불안한 경기력을 유지했으며 간판 미드필더 에펜베르크의 한국 전 교체 불만으로 팀을 이탈하는 등 안 좋은 분위기 속 대회를 치르며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은퇴 시즌이자 본인 커리어 마지막 월드컵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역시 총 3골을 넣는 등 분전하지만 팀은 또다시 8강에서 대회 다크호스팀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무너지며 패배 월드컵 통산 11골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클린스만은 그렇게 마지막 월드컵을 마무리한다
UEFA 유로
자국에서 열린 1988년 유로대회를 시작으로 총 3번의 유로 대회에 참가한 클린스만은 1988년 대회 팀은 4강전 오렌지 삼총사가 이끄는 네덜란드에 패하며 우승에 실패하지만 클린스만은 조별예선 덴마크전 1골을 넣는 등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며 커리어 첫 번째 메이저대회를 마무리한다 이후 1992년 유로 대회 역시 돌풍의 팀이자 깜짝 우승팀 덴마크에 4강전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하고 만다
1996년 잉글랜드에서 개최한 대회이자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한 커리어 마지막 유로대회 이탈리아, 체코, 러시아와 죽음에 조에 속하기도 했고 2년 전 월드컵에서의 실패로 자국 내 큰 기대감 없이 대회를 시작하지만 클린스만은 조별리그 러시아전 2골 넣으며 조국을 죽음의 조 1위로 진출시키는 위력을 보여준다
이후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 PK 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도왔으며 독일은 4강전 개최국 잉글랜드를 1:1 경기 종료 후 승부차기 끝에 6:5 승리를 거두며 결승진출에 성공한다 결승전 후반 60분 체코에 선제득점을 허용하며 어렵게 경기를 끌고가지만 후반 교체로 들어온 비어호프의 동점골과 유로대회 처음으로 나온 골든골을 넣는 활약 속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클린스만은 결승전 비록 득점을 올리지 못했지만 비어호프의 역사적인 골든골을 어시스트하며 서독이 아닌 통일된 조국의 첫 번째 우승이자 유로대회 통산 3번째 그리고 현재까지 우승이 없는 독일의 마지막 유로대회를 우승한 주장으로 남게 됐다
글을 마치며
90년대를 대표했던 세계적인 공격수 클린스만은 동시대 활약한 다른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들에 비해 비교적 저평가받는 인식이 존재한다 아무래도 선수시절 너무 잦은 이적을 통해 본인을 상징하는 클럽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잉글랜드 총 4개국 세계 적인 무대에서 뛰며 별도의 리그 적응기 없이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보낸 선수도 클린스만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90년대 세계축구는 월드컵과 유로를 제패한 독일축구가 정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세대교체 실패로 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암흑기가 찾아오지만 월드컵과 유로를 제패하는 과정 속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출전한 대회마다 좋은 움직임과 공격수로서 골까지 넣으며 조국에 우승컵을 안긴 클린스만이야 말로 90년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스트라이커가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여담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좋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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