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필드의 영원한 심장 스티븐 제라드
2004/2005 시즌 이스탄불에서 대망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다 각 리그 최고의 인기 클럽인 리버풀과 AC 밀란의 대결답게 양 팀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열기 속 경기는 시작되고 당대 최고의 스쿼드를 구축한 AC 밀란이 전반전을 3:0으로 리드한 채 하프타임에 돌입한다 전 세계 어떤 축구팬들도 하프타임 당시 리버풀의 우승 가능성을 예상한 팬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반전이 시작되고 제라드의 헤딩 골을 시작으로 6분 만에 내리 3골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더니 기어이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이스탄불의 기적을 만들어 낸다 리버풀의 캡틴 제라드는 빅이어를 들고 환호했고 처음이자 마지막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자축했다
<프로필>
이름: 스티븐 조지 제라드(Steven George Gerrard)
나이: 1980년 5월 30일
국적: 영국(잉글랜드)
신체: 183CM / 83KG
포지션: 미드필더
<선수 커리어>
국가대표: 114경기 21골
월드컵(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4년 브라질 월드컵)
UEFA 유로(유로 2000, 유로 2004, 유로 2012)
프로 커리어
리버풀 FC(1998년 ~ 2015년)
LA 갤럭시(2015년 ~ 2016년)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 및 축구 열기가 절정으로 달하며 유럽축구는 이전보다 국내에 더 많이 생중계되며 한국 축구팬들은 유럽 축구를 안방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
그 시기 유럽축구의 판도는 세리아 A에서 프리미어리그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프리미어리그의 빠른 템포와 파워풀한 경기력 선수들의 시원한 슈팅은 국내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한 리버풀의 팬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스티븐 제라드의 존재가 국내에 리버풀 팬들을 양성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리버풀 FC
뼛속부터 리버풀 선수였던 제라드는 리버풀 유스를 거쳐 1998년 꿈에 그리던 1군에 합류 프로 데뷔전을 치른다
프로 데뷔 초창기 미드필더가 아닌 라이트 백으로 뛰며 주전 미드필더들의 부상일 때 미드필더 자리를 메꾸는 역할을 맡았지만 이후 투쟁적인 태클을 바탕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미드필더 제라드의 이름을 영국 전역에 알리기 시작한다 차츰 주전으로 활약하며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제라드는 선수 일대 중대한 우승을 경험하게 되는데 2000/2001 시즌 FA컵과 리그컵 유로파 리그 우승까지 석권하며 3관왕을 차지 커리어 처음으로 맞는 우승의 영예를 3관왕으로 달성하게 된다
특히 유로파리그 결승전 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이며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제라드의 결승전 득점 본능은 이때부터 나타났던 거 같다 아무튼 팀의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제라드는 원더보이 마이클 오웬 캐러거와 함께 팀의 주축으로 성장하며 향 후 리버풀을 이끌 주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공격적인 룰도 수행하며 본인의 장기인 파워풀한 중거리 슈팅을 비롯 반대편으로 방향 전환하는 정확한 롱패스를 보여줬으며 최전방의 공격수들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공급하는 등 공격형 미드필더로의 재능을 뽐내며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월드클래스 공격수들과의 좋은 호흡을 보이기 위한 초석을 다진다
특히 2003년 만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미 하피아로 부터 주장 완장을 물려받으며 팀의 주장으로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리버풀은 그 시기 다른 라이벌팀과는 다르게 소극적인 선수영입으로 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에게 밀리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고 2003/2004 시즌 로만 구단주의 등장으로 첼시에게까지 밀리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시작한 2004/2005 시즌 리버풀은 공격의 핵심 마이클 오웬을 레알 마드리드에게 내주게 되며 불안한 출발을 시작하는데 리그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최종순위 5위를 기록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다음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하며 리그는 마무리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역사적인 우승을 이루며 최고의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된다
안필드에서 열리는 올림피아코스와의 챔피언스리그 예선 마지막 경기 무조건 2골 차 이상으로 승리해야만 다음라운드에 진출하는 리버풀은 경기 종료시점을 앞두고 2:1로 리드하지만 한골이 필요했고 제라드의 극적인 중거리 골로 기사회생하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이후 레버쿠젠, 유벤투스, 첼시를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하고 결승전 역사적인 이스탄불의 기적을 만들어내며 팀 역사상 6번째 챔피언스리그 왕좌에 오르게 된다
든든한 구단주를 등에 업은 첼시의 무리뉴 감독은 제라드 영입에 큰 관심을 보였고 제라드 역시 첼시로의 이적을 고민했지만 리버풀의 역사적인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함께 팀에 잔류하게 된다 2005/2006 시즌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방출로 인해 리그 순위 3위 챔피언스리그 16강전 벤피카에게 패 하며 조기 탈락하지만 웨스트햄과의 FA컵 결승전 제라드는 환상적인 동점 중거리 골을 포함 2골 1 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부차기 끝 우승을 만들어내며 또 한 번의 타이틀 획득과 함께 성공적인 시즌을 마무리하는데 이 경기 제라드는 평점 10점이라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 리버풀에 제라드의 존재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기도 했다
2007년 웨스트햄에서 아르헨티나 수비형 미드필더 마스체라노가 이적해 오고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카윗을 폐예노르트에서 영입하며 알차게 스쿼드를 꾸리게 된 리버풀은 다시 한번 리그 우승에 도전하지만 마스체라노의 영입으로 미드필더진의 강력함에 비해 카윗의 득점력이 생각보다 폭발하지 못하며 리그 최종순위 3위로 또 한 번 우승에 미끄러지고 만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전 대회 우승팀 바르셀로나를 16강에서 꺾는 등 다시 한번 결승에 진출 AC 밀란과 또다시 결승전 대결이 성사되지만 이를 갈고 나온 AC 밀란에게 1:2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2008년 여름 부족한 득점력을 메꾸기 위해 스페인 AT 마드리드의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하며 큰 기대감에 시즌을 시작하게 되는데 토레스는 이적 첫 시즌임에도 불구 리그 24골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이적 첫 해 용병 최다 득점을 갈아치우는 활약을 보여주었고 제라드 역시 처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토레스와 최고의 공격 파트너 쉽을 보여주지만 좋은 경기력에도 불구 리그 4위 챔피언스리그 역시 첼시에 4강에서 패하며 또 한 번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2008/2009 시즌 제라드에게 처음으로 리그 우승 기회가 찾아왔는데 제라드 본인 커리어 하이인 리그 16골을 기록하며 토레스와 여전히 좋은 공격력을 보여주었으며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 4:1 대승을 하는 등 줄곳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리그 막판 집중력 저하로 무승부 경기가 많아지기 시작했으며 반면 우승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퍼거슨 감독의 노련한 리그 운영이 빛을 발하며 리버풀은 승점 4점 차로 준우승에 그치며 또 한 번 리그 타이틀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내주고 만다
이후 리버풀은 팀의 주축 사비 알론소가 다음시즌 레알 마드리드 이적을 시작으로 매년 팀의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며 거짓말처럼 추락하는데 2009/2010 시즌을 시작으로 2012/2013년까지 총 4 시즌 간 7위 6위 8위 7위를 기록하며 깊은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제라드는 팀의 암흑기간 중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돌기도 했지만 끝까지 팀에 남아 리버풀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리버풀 팬들을 위로했지만 제라드 역시 점점 떨어지는 신체능력으로 인해 공격적인 룰이 아닌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로 포지션 변화를 주었고 깊은 침체기 끝에 2013/2014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2013/2014 시즌 프리미어리그 3년 차에 돌입하며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 수아레즈와 그의 파트너 스터리지 공격형 미드필더 쿠티뉴의 삼각편대가 폭발하며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었고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로 포지션 변화에 성공한 제라드의 경기 운영이 빛을 바라며 후반기 리그 1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
특히 우승의 가장 결정적인 고비였던 34라운드 힐스보로 참사 25주년을 맞아 진행된 맨체스터 시티와의 안필드 홈경기에서 극적으로 3:2 승리를 거두며 우승에 대한 기대는 최고조에 달했으며 경기 종료 후 기쁨의 눈물을 보임과 동시에 동료들을 모아놓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제라드의 리더십에 전 세계 축구팬들은 그의 우승을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하지만 첼시와의 36라운드 제라드와 리버풀 팬들에게 끔찍한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
득점 없이 0:0 팽팽한 균형이 이어지던 후반 막판 후방에서 사코의 패스를 받던 제라드는 퍼스트 터치 실수 후 미끄러지며 달려들어오던 첼시의 공격수 뎀바바에게 공을 헌납 그대로 선제골을 허용하게 된다 이후 득점이 필요했던 리버풀은 무리하게 공격 라인을 올리다 결국 추가실점까지 하며 0:2 패배를 당하고 만다 이 경기로 자력우승의 기회는 맨체스터 시티로 넘어가게 되고 맨체스터 시티는 남은 두 경기 연승을 거두며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하게 된다 단 한 번의 실수로 그렇게 원했던 리그 우승 타이틀에 또 한 번 미끄러지게 된 제라드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등 정신적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정신적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건지 제라드는 다음시즌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여주었고 결국 제라드는 유스 시절까지 포함 27년의 리버풀 생활을 마무리하며 미국 메이저리그 LA 갤럭시로 이적하게 된다 이후 LA 갤럭시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1 시즌을 끝으로 아쉬운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국가대표
제라드가 국가대표로 잉글랜드에서 활약할 당시 잉글랜드 멤버는 역사상 최고의 멤버를 보유하며 메이저대회 타이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우승은 고사하고 준결승 진출 한번 하지 못한 불운의 멤버로 기억되고 있다
UEFA 유로
유로 2000 대회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에 소집 후보로 대회에 참가하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은 조 예선 탈락하며 대회를 조기 마감한다 제라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하며 유로 2004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는데 이 대회는 제라드의 멀티 능력이 빛을 발하는 대회 중 하나이다 잉글랜드는 대회 시작 전 왼쪽 윙에 대한 적임자가 없었는데 에릭손 감독은 제라드의 멀티능력을 극대화하여 오른쪽에 베컴 중앙에 스콜스와 램파드 왼쪽에 제라드를 배치하며 대회를 시작한다 첫 경기 프랑스와의 예선 1차전 제라드는 경기 막판 PK를 내주는 결정적인 백패스를 범하지만 왼쪽 윙으로 나와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잉글랜드 왼쪽 윙에 대한 불안감을 없앴으며 두 번째 스위스와의 경기는 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8강 진출을 이끈다 비록 8강전 개최국 포르투갈과 2:2 접전 끝 승부차기에 패하며 탈락하지만 제라드의 멀티 능력이 없었다며 대회 기간 내내 왼쪽 윙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경기를 치렀을 잉글랜드였기에 제라드는 웨인 루니 램파드와 함께 좋은 활약을 보이며 대회를 마무리한다
충격적인 예선 탈락으로 유로 2008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잉글랜드는 유로 2012 본선에 참가하게 되고 제라드는 주장으로 팀을 이끌고 본인의 마지막 유로대회를 치른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 속 자국 내 큰 기대감 없이 대회에 참가하지만 잉글랜드는 의외의 끈끈하고 조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한다 프랑스와의 1차전 제라드는 앤디 콜의 헤딩골 어시스트를 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잉글랜드는 지긋지긋했던 메이저 대회 스웨덴 징크스를 끝내고 승리를 거두는 등 다시 한번 기대감을 높이지만 이탈리아와의 8강전 또다시 승부차기에 패배하며 대회를 마무리 제라드 커리어 마지막 유로대회 역시 마무리하게 된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독일과의 지역예선 중거리 골을 기록하며 팀의 역사적인 독일 원정 5:1 승리 경기에 활약하며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지만 부상으로 결국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맞이한 2006년 월드컵은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멤버로 대회를 임하는데 잉글랜드가 자랑하는 제라드와 램파드 라인은 서로 동선이 겹치는 등 대회 기간 불협화음을 보이지만 제라드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경기 중거리 골과 스웨덴전 헤딩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하며 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한다
하지만 제라드는 골과는 별개로 역시 램파드와 좋은 시너지를 보여주지 못한 채 팀은 답답한 경기력 속 8강전 포르투갈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탈락하고 만다 대회를 시작하기 전 잉글랜드 자국민들은 이 멤버로 월드컵 우승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50년 동안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길정도로 우승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대회였기에 8강 탈락은 제라드와 잉글랜드에게 너무 뼈아픈 탈락으로 남게 되지만 잉글랜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주장으로 대회에 참가한 제라드는 미국과의 1차전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출발을 보이지만 팀은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로 인해 1:1 무승부를 기록한다 이후 알제리와의 2차전 역시 0:0 무승부를 기록하는 졸전을 펼치기도 했는데 제라드와 램파드의 중원을 살려줄 중요한 선수였던 가레스 베리의 부상 후유증으로 제대로 폼이 올라오지 않으며 다시 한번 램파드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만다 3차전 제라드는 유로 2004 대회와 마찬가지로 왼쪽 윙으로 활약 팀은 1:0 승리를 거두며 조 2위 16강 진출하지만 독일과의 경기 램파드의 골이 무효처리되는 희대의 오심을 남긴 체 1:4 대배하며 16강에 대회를 마감하고 만다
커리어 3번째이자 역시 주장으로 참가한 본인의 마지막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1차전 이탈리아에게 1:2 패배 2차전 우루과이전 결정적인 수아레스의 결승골 빌미를 제공하며 또다시 1:2 패배를 기록하며 조별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채 대회를 마감해야 했다
글을 마치며
반대편 뛰어가는 선수의 가속에 맞게 정확한 위치로 배달되는 빠르고 날카로운 롱패스 극적인 순간 팀을 구하는 중거리 슈팅력에 거친 플레이를 구사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파워풀한 태클능력 등 선수로서 정말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제라드는 끝내 리버풀에서 리그우승을 달성하지 못하였고 잉글랜드 국가대표로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채 은퇴한다
하지만 이스탄불의 기적 당시 0:3으로 지고 있던 라커룸의 분위기를 살려주며 끝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리더십을 보여준 제라드는 선수로서 모든 장점을 가지고 있는 전천후 미드필더이자 현대축구의 가장 완성형 미드필더로 평가받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줬던 투지와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야 말로 팬들이 제라드를 사랑하고 모든 감독들이 그를 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리그 우승 타이틀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는 제라드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그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줬던 열정만큼은 그 어떤 우승트로피보다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축구 > 축구 레전드 선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우수선수 디에고 포를란 (0) | 2023.03.28 |
---|---|
금발의 폭격기 위르겐 클린스만 (0) | 2023.03.24 |
플라잉 더치맨 오베르마스 (4) | 2023.03.21 |
두개의 심장 파벨 네드베드 (0) | 2023.03.19 |
아스널 무패 우승 캡틴 파트리크 비에이라 (5) | 2023.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