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 최우수선수 디에고 포를란
2009/2010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 전후반 양 팀 팽팽한 1:1 동점상황 연장 116분 왼쪽에서 낮고 빠르게 올라온 크로스를 포를란이 방향을 틀어 감각적인 결승골을 기록한다 포를란의 멀티골에 힘입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풀럼을 꺾고 UEFA 컵에서 유로파 리그로 명칭이 바뀐 유로파 리그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렇게 포를란은 팀에 1961/1962 시즌 UEFA 컵위너스컵 이후 48년 만에 UEFA 주관 타이틀의 영광을 바친다
<프로필>
이름: 디에고 포를란(Diego Forlán)
나이: 1979년 5월 19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 180CM / 7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선수 커리어>
국가대표: 112경기 36골
월드컵(2002년 한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2004년, 2007년, 2011년)
프로 커리어
CA 인데펜디엔테(1998년 ~ 200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002년 ~ 2004년)
비야레알 CF(2004년 ~ 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2007년 ~ 2011년)
인테르 밀란(2011년 ~ 2012년)
SC 인테르나시오나우(2012년 ~ 2013년)
세레소 오사카(2014년 ~ 2015년)
CA 페냐롤(2015년 ~ 2016년)
뭄바이 시티 FC(2016년)
킷치 SC(2018 SUS)
축구경기를 보면 가끔씩 특정 선수에게 공이 연결됐을 때 이 선수가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 선수들이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현재 생각 나는 선수로는 전성기 시절의 호나우지뉴가 그랬고 첼시 시절의 로벤이 그랬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절대적인 존재감으로 중요한 경기 매 순간 인생골을 작렬하며 우루과이를 4강으로 이끌었던 디에고 포를란이 그랬다 일명 자블라니 마스터로 불리며 남아공 월드컵 최우수 선수로 뽑힌 그의 커리어를 돌아보자
CA 인데펜디엔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우루과이 국적의 포를란은 자국 내 명문 클럽 CA 페냐롤 유스팀에 입단 축구를 시작하지만 아르헨티나 클럽 인데펜디엔테로 이적 유스시절을 보낸 뒤 1998/1999 시즌 우루과이가 아닌 인데펜디엔테 소속 아르헨티나 1부 리그에서 첫 프로 데뷔에 성공한다 프로 첫 해 리그 2경기 출전에 그치지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는데 1999/2000 시즌 프로 2년 차 생각보다 어린 포를란에게 경기 출전 기회가 주어졌고 포를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리그 24경기 7골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프로무대에 완벽히 적응한다
이듬해 프로 3년 차 2000/2001 시즌 리그 36경기 18골이라는 엄청난 임팩트를 남기며 아르헨티나 리그 내 최고의 유망주로 거듭난 포를란은 아르헨티나의 축구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의 추천으로 유럽 유수의 명문클럽들의 레이더망에 들게 되었고 2001/2002 시즌 리그 전반기 18경기 12골을 넣음과 동시에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새로운 스트라이커를 찾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눈에 띄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큰 기대 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포를란은 이적 후 1주일 만에 데뷔전을 치르게 되는데 퍼거슨 감독이 그에게 거는 기대감이 얼마만큼인지 알 수 있는 출장 기회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포를란의 맨유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빠른 템포와 강력한 몸싸움을 구사하는 프리미어리그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며 이적 후 9개월 만인 챔피언스리그 마카비 하이파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10월 애스턴 빌라를 상대로 무려 10개월 만에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넣어야 했다 결국 기대 속 큰 성장을 하지 못한 채 주전 공격수 반니스텔루이의 백업 멤버에 그치며 간간히 출전 후 터뜨리는 파워풀한 골 외에는 큰 임팩트를 심어주지 못했으며 2004/2005 시즌은 앞두고 잉글랜드 최고 유망주 웨인 루나의 입단으로 팀 내 입지가 더 줄어들자 이적을 결심하게 된다
비야레알 CF
포를란은 2004/2005 시즌 잉글랜드 무대를 떠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노란 잠수함 비야레알로 이적하게 된다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실패로 팬들의 우려 속 비야레알에 입성한 포를란이지만 우려와 달리 포를란의 라리가 이적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었는데 비슷한 시기 바르셀로나에서 감독 전술의 희생양이 되어 부진한 활약을 이어오던 리켈메가 비야레알로 임대영입이 되었고 포를란과 리켈메는 이적 첫 시즌부터 엄청난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며 라리가의 판도를 바꿔버리는 활약을 한다
당시 비야레알의 감독이던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은 리켈메의 플레이메이킹을 활용한 리켈메의 팀으로 변화시켰고 그의 부족한 수비가담은 스페인 국가대표 마르코스 세냐의 활동량과 수비범위로 메꾸게 된다 그렇게 수비 부담이 줄어든 리켈메는 본인이 원하는 축구를 십분 발휘 전매특허인 탈 압박, 스루패스, 중거리 슈팅등이 살아나며 수비수들이 리켈메에 집중하는 사이 포를란에게 여유공간이 생겨났고 프리미어리그에 비해 몸싸움의 강도가 약한 리그의 특성을 십분 발휘 포를란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 포지션 속 플레이메이킹에 전담한 리켈메는 양질의 패스를 포를란에게 공급해 줬으며 포를란은 페널티 박스 안 밖을 가리지 않고 골을 넣기 시작한다 이적 첫 해 리그 38경기 25골이라는 엄청난 득점력을 보이며 사무엘 에투를 한골 차이로 따돌리고 생애 첫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한다
당시 포를란은 인터뷰를 통해 리켈메의 패스는 다른 선수들과 차원이 다르다 마치 공이 춤을 추며 오는 거 같다며 그와의 플레이에 엄청난 만족감을 나타내며 시즌 내내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 줬는데 특히 바르셀로나 홈 3:0 승리 홀로 두 골을 기록 원정 3:3 무승부 경기 헤트트릭을 달성하는 등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입단 초기 그의 영입에 부정적이었던 비야레알 팬들의 반응을 찬사로 바꿔 놓음과 동시에 팀을 그 해 리그 3위에 올려놓으며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선물하게 되는 그야말로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음시즌 팀의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과는 별개로 포를란은 모든 대회 13골이라는 전 시즌 득점왕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활약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 시기 한 시즌만에 부진한 포를란에 대한 평가는 또 한 번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포를란은 그런 팬들의 모습에 다소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2006/2007 시즌 리그 19골을 넣으며 다시 한번 부활에 성공하게 되고 또 다른 스페인 팀으로의 이적을 준비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7/2008 시즌을 앞두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젊은 주장이자 스트라이커 페르난도 토레스는 프리미어리그 리버풀로 이적하게 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의 대체자로 디에고 포를란을 비야레알로부터 영입해 온다
포를란은 이 시기 당시 20살의 유망주였던 세르히오 아구에로 포르투갈 국가대표 시망 사브로사와 엄청난 콤비플레이를 보여주며 이적 첫 시즌 리그 36경기 16골을 기록 팀의 리그 4위 다음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시망과 아구에로의 전진 드리블을 통한 수비수를 달고 다니는 사이 포를란에게 기회가 오면 포를란의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 능력이 빛을 발했으며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은 이적 두 번째 시즌인 2008/2009 시즌 절정에 오르는데
포를란은 리그 33경기 32골이라는 경기당 1골에 육박한 결정력을 보여주며 생에 두 번째 스페인 리그 득점왕에 등극한다 이 시기 포를란은 비야레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던 시기보다 득점력은 물론이고 찬스 메이킹까지 물이 올랐는데 특유의 강력한 캐논슈팅 및 박스 안에서의 침투 마무리 능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으며 본인에게 수비가 붙을 시 아구에로나 침투해 들어오는 시망에게 반 박자 빠른 침투 패스를 넣어주는 등 팀의 완벽한 에이스로 거듭나게 된다 포를란의 이러한 활약에 팀 또한 작년 시즌과 동일한 리그 4위를 기록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되며 프리메라리가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양강을 위협하는 강팀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시작된 2009/2010 시즌 포를란은 리그 18골을 넣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 후 세 시즌 간 리그 66골이라는 엄청난 득점력을 유지함과 동시에 유로파 리그 팀을 정상에 올려놓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비록 팀은 챔피언스리그 조 3위로 다음라운드 토너먼트 실패 후 유로파 리그에 출전하지만 포를란은 유로파리그 8강전 발렌시아전 원정 득점 4강전 리버풀을 상대로 홈에서 1:0 승리의 결승골 원정 연장 후반 팀의 결승진출에 결정적인 결승골 득점을 포함 결승전 홀로 두 골을 넣으며 MOM에 선정되는 등 대회 총 7골을 넣었으며 이러한 활약을 통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48년 만의 UEFA 주관 대회에 우승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활약에도 불구 포를란은 이후 전성기에서 내려오며 부진을 거듭하는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엄청난 활약에 에너지를 쏟아부은 건지 2011/2012 시즌 다소 저조한 리그 13골을 기록하며 다음시즌 세리아 A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한다 하지만 반등을 노리던 세리아 A 진출은 잦은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리그 20경기 3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게 되고 1 시즌을 끝으로 브라질 리그의 인테르나이소나우로 이적 그 이후 J리그 진출 후 우루과이 자국리그 페냐롤 등을 거치다 2018년 홍콩 리그 킷치 SC 깜짝 이적과 동시에 그 시즌을 끝으로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국가대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4살 어린나이에 참가한 2002년 한일 월드컵 포를란은 세네갈과의 조예선 3차전 팀의 3:3 동점 속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커리어 첫 번째 월드컵 득점에 성공하지만 팀은 2 무 1패로 조별예선 탈락하고 만다 2006년 지역예선 탈락으로 8년 만에 돌아온 남아공 월드컵은 그야말로 포를란을 위한 무대라고 할 수 있었는데
포를란은 대회 수아레스와 카바니 투톱의 한 단계 아래인 공격형 미드필더 롤을 수행하며 팀의 전체적인 공격 전개를 담당하는 역활을 부여받는다 두 선수에게 침투패스는 물론 두 선수에게 수비가 붙을 시 빈 공간을 활용해 포를란의 슈팅력을 극대화한 전술로 포를란의 슈팅능력이 빛을 발하는 대회이기도 했다 특히 포를란이 이 대회에서 엄청난 골들을 넣을 수 있었던 건 반발력이 유난히 심해 월드컵 역대 최악의 공인구로 평가받는 자블라니를 완벽하게 다뤄냈기에 자블라니 마스터라 불리기도 했다
개최국 남아공 16강 단골 팀 멕시코 전 대회 준우승팀 프랑스와 한 조에 속한 우루과이는 1차전 프랑스와 득점 없이 무승부로 2차전 남아공을 맞이했는데 이 경기 포를란은 환상적인 독수리 중거리 골 및 PK 득점에 성공하며 멀티골을 기록 팀의 3:0 승리에 기여 2승 1 무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일등공신이 된다
한국과의 16강 집중견제 속 수아레스의 첫 번째 골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한 포를란은 8강전 가나와의 환상적인 FK 동점골을 성공 팀을 승부차기 끝 4강으로 이끌게 된다 4강 네덜란드전 역시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1:1 동점을 만들지만 팀은 2:3 패하며 결국 결승진출이 좌절되지만 독일과의 3,4위전 환상적인 발리골을 성공시키는 등 대회 총 5골 1 도움을 기록하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게 된다
남아공전 PK 골을 제외한 4골이 전부 원더골일 정도로 환상적인 개인 기량에 의한 골들을 만들어냈으며 특히 팀이 꼭 필요로 하는 순간에 넣은 골들이었기에 우루과이 공격진을 홀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이러한 활약을 통해 월드컵 역사상 4위 팀에서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하는 등 남아공 월드컵 최고의 선수로 등극하며 본인 커리어 최고의 월드컵을 마무리한다
글을 마치며
비록 남아공 월드컵 이후 한순간에 폼이 떨어져버린 포를란 이지만 2011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멀티골을 기록하는등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했다
많은 사람들은 포를란이 기복이 심하고 남아공 월드컵 이 후 폼이 너무 일시적으로 하락해 선수 말년이 평범한 그저 그런 선수로 저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남아공 월드컵 우루과이 대표팀을 이끌고 선수 개인이 팀에 미치는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줬으며 전성기 시절 클럽에서 강팀과의 대결에서도 본인의 기량을 유지하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포를란은 충분히 우루과이와 스페인 리그 레전드로 평가받을 만하다
분명 아쉬운 말년을 보낸 포를란이지만 전성기 시절 비야레알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우루과이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그 어떤 공격수들과 견주어도 부족함 없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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