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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축구 레전드 선수

메시 구단주 베컴의 화려했던 선수 시절(프리킥 마스터 이자 맨유 레전드 데이비드 베컴)

by 방글이파더 2023. 6. 30.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16강 전이 끝나고 잉글랜드 언론은 10명의 자랑스러운 사자들과 1명의 바보라는 기사를 연일 보도하며 특정 선수에 대한 엄청난 비난을 쏟아낸다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 2대 2로 팽팽히 맞서고 있던 후반 베컴은 상대팀 시메오네(현 at 마드리드 감독) 선수에게 불필요한 비 신사적 행위로 퇴장당했고 그로 인해 한 명이 부족한 잉글랜드는 결국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에게 패하며 16강에 탈락하고 만다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등한 경기력으로 아쉽게 패했기에 베컴의 불필요한 퇴장에 대한 잉글랜드 팬들과 언론의 베컴에 대한 원성은 극에 달 했고 심지어 리그 경기 베컴의 홈 경기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조차 베컴이 볼을 잡으면 야유를 낼 정도였다 

하지만 베컴은 그 해 1998/1999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자국 팬들의 야유를 환호로 바꿨으며 유로 2000 대회 이후 국가대표 주장 완장을 차며 총 두 번의 월드컵과 한 번의 유로 대회에 참가하는 잉글랜드와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된다

1998/1999 시즌 맨유의 트레블 주인공 데이비트 베컴

 

이름: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출생: 1975년 5월 2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 180cm / 76kg

포지션: 윙어, 중앙 미드필더

국가대표: 115경기 17골

월드컵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UEFA 유로

유로 2000, 유로 2004

프로 커리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993년 ~ 2003년) →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1995/임대)

레알 마드리드(2003년 ~ 2007년)

LA 갤럭시(2007년 ~ 2012년) → AC밀란(2009,2010/임대)

PGS(2013년)

축구를 잘하는 선수에게는 당연히 최고의 축구선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베컴을 표현할 때는 최고의 축구 선수보다 최고의 축구 스타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기도 했는데 축구 실력 외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스타성이 너무 부각되는 선수였기에 스타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비록 이러한 스타성으로 축구 실력이 과소 평가 되기도 했지만 베컴의 오른발은 잉글랜드의 자랑이었으며 정확한 킥력을 갖춘 역대 최고의 프리킥 키커 이기도 했다

 

목차
1. 1998/1999 시즌 맨유 트레블 달성의 주역
2. 퍼거슨 감독과의 불화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후
3.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장 베컴

1. 1998/1999 시즌 맨유 트레블 달성의 주역

어릴 적부터 맨유를 동경해 오던 어린 소년 베컴은 맨유 유스팀에 입단 퍼거슨의 아이들 한축을 담당하며 1군 무대에 당당히 데뷔한다 비록 1부 리그 데뷔 시즌 매 시즌 우승을 노리는 강팀 맨유였기에 이제 막 1부 리그에 올라온 베컴이 당장 주전으로 활약할 순 없었고 베컴은 당시 2부 리그 소속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로 임대를 떠나며 주전으로 활약 경기 감각을 쌓기 시작한다

하지만 임대 2달 만에 맨유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베컴은 긴급하게 맨유로 복귀할 수 있었고 그렇게 오른쪽 윙 플레이어로 출전하며 본격적인 맨유에서의 프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1996/1997 시즌 윔블던과의 시즌 개막전 그 유명한 60야드 초장거리슛을 성공시키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베컴은 그 시즌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FA컵 더블 달성에 일조했으며 1997년을 끝으로 갑작스럽게 은퇴한 당시 맨유의 상징 에릭 칸토나의 등번호 7번을 물려받으며 칸토나-베컴-호날두로 이어지는 맨유의 에이스 상징 등번호 7번 계보의 역사를 알린다

1998/1999 시즌 맨유의 트레블 달성 챔피언스리그 경기 하이라이트

칸토나의 등번호 7번을 물려받은 베컴은 퍼거슨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매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환상적인 오른발 크로스와 대지를 가르는 택배 패스 대포알 중거리슛과 장기인 프리킥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왼쪽 라인의 라이언 긱스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좌우 날개로 맨유의 무수한 영광의 시절을 함께한다

그렇게 맞이한 1998/1999 시즌 공격의 앤디 콜, 드와이드 요크, 미드필더의 긱스, 스콜스, 로이 킨 수비의 네빌과 스탐 골키퍼의 슈마이켈의 맨유 역대 최고의 선수진으로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트레블 달성에 성공했으며 베컴은 이 시즌 리그, FA, 챔피언스리그 무대 상관없이 양질의 크로스를 올리며 팀 득점을 도왔고 경기 중간중간 결정적인 환상적인 중거리 골과 프리킥 골을 넣으며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아스널과의 FA컵 4강전 팀이 0:1로 끌려가던 경기 베컴의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는 환삭정인 중거리 골로 2:1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누 캄프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후반 종료 3분을 남기고 0:1로 끌려가던 경기 두 번의 베컴 오른발로 시작된 코너킥을 기점으로 2골을 넣으며 역사적인 트레블 달성에 성공하게 된다

그 시즌 활약을 인정받아 베컴은 1999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는데 당시 1위였던 히바우두와 비교해도 개인 커리어뿐만 아니라 특히 트레블을 달성 팀 성적은 압도적이었기에 시간이 흘러 당시의 결과를 두고 발롱도르 수상자는 베컴이 받았어야 한다는 결과론적인 얘기가 많이 나오기도 했다

트레블 달성 이후로도 2003년까지 맨유와 동행을 이어가며 맨유 통산 프리미어리그 총 6회 FA컵 2회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을 달성한 베컴은 영원할 것만 같았던 맨유와의 동행을 끝내고 스페인의 거함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2. 퍼거슨 감독과의 불화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후

2003년 퍼거슨 감독과의 불화로 베컴은 갈락티코 1기 멤버로 레알 마드리드로 합류하게 된다 레알 이적 첫 시즌 오른쪽 윙 포지션의 피구로 인해 중앙 미드필더로 시즌을 시작한 베컴은 이적 초반 바뀐 리그와 포지션으로 부진한 활약을 보이지만 차츰 자신의 장점인 활동량과 특유의 정확하고 날카로운 킥력으로 중원에서 존재감을 보여주며 라리가 리그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다음 시즌 피구의 인터밀란 이적 후 본인의 본 포지션인 오른쪽 윙으로 좋은 활약을 보이지만 이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무리한 스타선수들 영입으로 팀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고 3 시즌 연속 무관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나고 맞이한 2006/2007 시즌 레알로 부임한 카펠로 감독과 초반 불화로 시즌 초 벤치에서 경기를 보내는 베컴이었지만 점차 자신의 장점인 킥 능력 발휘하며 중요한 경기 팀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리그 중후반 주전으로 활약한다

특히 과거 맨유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인 반니스텔루이와 레알에서 다시 한번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3년 만에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우승에 일조 레알 입단 후 첫 우승 타이틀 획득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고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이후 미국 LA 갤럭시로 이적하며 6년 동안 미국 축구리그 부흥을 이끈 베컴은 2008/2009, 2009/2010 겨울 시즌 동안 세리아 A AC 밀란으로 임대 활약하기도 했는데 AC 밀란 임대 기간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며 역시 베컴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특히 베컴은 AC 밀란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세리아 A 당시 유럽 3대 리그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선수로 남기도 했으며 팬들은 여전한 베컴의 기량에 유럽무대 복귀를 원하기도 했다

2012년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5개월 후 1년 계약 연장 옵션으로 PSG 입단하며 유럽 무대로 리턴하는데 특히 자신의 주급 2억 5000만 원 5개월 치를 전부 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선행을 보여줬으며 2013년 5월 18일 브레스투아와의 리그앙 최종전을 끝으로 1년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은퇴를 선언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축구 선수 커리어를 마무리한다

3.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장 베컴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총 3회 월드컵에 참가한 베컴은 잉글랜드 국적 유일한 월드컵 연속 3회 대회 득점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했으며 최고의 스타선수들이 즐비한 당시의 잉글랜드 선수단에서도 단연 최고의 아이콘이자 팀의 중심으로 활약한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콜롬비아와의 조별예선 3차전 자신의 특기인 환상적인 프리킥 득점에 성공하며 2:0 승리를 견인 팀의 16강 진출을 이끈 베컴은 아르헨티나와 16강전 주전으로 선발출전 오웬의 역사적인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만 아르헨티나 시메오네에게 불필요한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며 퇴장 16강 탈락의 주범으로 꼽히며 첫 월드컵 대회를 쓸쓸히 마무리한다

2002 한일 월드컵

주장 완장을 차고 참가한 2002 한일 월드컵 특히 유럽 예선 그리스와의 마지막 경기 1:2로 뒤지고 있는 경기종료 직전 환상적인 프리킥 동점골을 기록하며 독일을 플레이오프로 밀어내고 월드컵 직행 티켓을 획득하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다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죽음의 조로 뽑히는 스웨덴,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 한조에 속한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 4년 전 패배를 설욕하며 1:0 승리를 거두는데 오웬이 얻어낸 PK를 베컴이 성공시키며 자신의 4년 전 실수를 만회 팀의 16강 진출의 일등 공신이 된다 1승 2 무로 16강에 진출한 잉글랜드는 덴마크를 3:0으로 누르고 당시 대회 우승팀 브라질과의 8강전 1:0 리드상황 호나우지뉴의 환상적인 퍼포먼스에 밀려 1:2 패배로 아쉽게 대회를 마감한다

2006 독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잉글랜드는 역사상 최고의 멤버로 대회에 참가 강력한 우승후보 0순위로 자국민들의 기대가 엄청났는데 특히 4년 전 죽음의 조와는 다르게 수월한 조에 속하며 월드컵 우승에 대한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았지만 램파드-제라드 라인의 불협화음과 환상의 스쿼드를 가지고도 단조로운 4-4-2 전술만 일관하며 대회 내내 답답한 경기력을 보여준다

답답한 경기력 속 베컴의 오른발이 결정적인 골찬스를 만들어내며 팀을 위기에서 구했고 특히 에콰도르와 16강전 답답한 경기력 속 또 한 번 자신의 장기인 프리킥콜로 1:0 승리를 이끌었지만 8강전 포르투갈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또다시 8강에서 대회를 마가 하게 된다

 4. 데이비드 베컴에 대한 글을 마치며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이 수비를 제치고 크로스를 올리는 플레이와는 반대로 베컴은 정확한 킥력을 바탕으로 위치, 자세 상관없이 언제나 포워드들에게 양질의 크로스를 올려주며 포워드들이 어느 각도 어느 위치에서도 공을 받아 골을 넣을 수 있도록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수려한 외모와 스타성에 가려져 저평가되기도 했지만 베컴은 높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매 경기 그라운드 이곳저곳 누비며 뛰어다녔고 투쟁심 넘치는 플레이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중요한 순간 스타성을 보여주며 극적인 골도 많이 만들어낸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유럽 3대 리그에서 별도의 적응 기간 없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으며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모여있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팀을 이끌었던 베컴이야 말로 최고의 축구 선수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